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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병헌·송중기만큼 빛났다"…2012 충무로의 제왕 류승룡

김지혜 기자

입력 : 2012.12.31 13:11|수정 : 2012.12.31 13:34


"류승룡 씨는 자신이 들어가야 할 때와 빠질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예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은 류승룡에 대해 '영리한 배우'라고 말했다. 연기의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 대단해 스스로 치고 빠질 때를 정확히 안다는 얘기였다.

전국 1,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류승룡은 엄연히 따져 주연 역할은 아니었다. 상반기 4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던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그의 존재감은 주연 배우들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2012년 충무로를 빛낸 '올해의 배우'를 거론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병헌, 하정우, 송중기, 최민식 등을 거론할 것이다. 여기에 캐릭터의 비중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의 존재감을 빛낸 류승룡을 빼놓을 수 없다. 연기 인생 약 20년을 통틀어, 올해는 본인에게도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한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류승룡은 '광해'와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캐릭터 연기를 진수를 보여줬다. 천민 '하선'이 완벽한 가짜 왕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허균'(광해)와 동서양의 여자들을 홀리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장성기'(내 아내의 모든 것)는 도저히 그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적역인 캐릭터들이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두 영화를 선택한 것은 캐릭터의 매력이 큰 몫을 차지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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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의 경우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의 일곱 색깔 같은 다채로운 매력이 있었다. '광해'의 허균은 포커페이스랄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은 정제된 매력이 있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있어 '이번엔 이런 역할을 해야지'와 같이 계산적으로 선택하진 않는다. 그때 그때의 작품들 중에서 끌리는 것을 선택한다"

류승룡은 캐릭터 분석력이 탁월하다. 캐릭터의 성격과 스타일을 완벽히 이해한 뒤에서야 어떤 연기가 가능할지 판단을 내린다. 그는 "어떤 캐릭터는 리얼리티가 필요한 즉 외향적으로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내 사랑 내 곁에'의 루게릭병 환자 같은 캐릭터가 그렇다"면서 "'광해'의 허균의 경우 상식적으로 생각 가능한 캐릭터를 확대하면 되는 경우였다"고 말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캐릭터가 가진 다양한 매력 때문에 보기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류승룡은 "장성기라는 캐릭터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캐릭터였다. 끼도 많고 재주도 많은 캐릭터였기 때문에 연기할 때 있어서도 많은 스킬들을 사용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내년 1월 개봉하는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그가 연기하면서도 가장 어렵고 두렵다고 생각하는 캐릭터였다. 정신 연령이 6살에 멈춰있는 40대를 연기하기란 생각만큼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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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시나리오를 보는 남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로 '촉'이 좋다고 할 정도로 흥행이 될 작품들을 발견해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에 대해 "시나리오의 완결성을 중시하는 편이다. 간혹 캐릭터도 좋고 초중반까지는 재밌는데, 끝이 이상한 경우가 많다"면서 "아무리 흥행을 보장하는 요소들이 강해도 '그래서 어쩌라고?'식의 결말은 싫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아, 재밌다!'라는 느낌이 중요하다. 때로는 대사 한마디가 나를 움직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정 장르는 선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류승룡은 "배우에게 개인이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한계가 빨리 온다고 생각한다. 어떤 캐릭터,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든 그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마음을 열고 작품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류승룡을 영화 현장에서 처음 봤던 2006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2006년 장진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 '거룩한 계보'의 현장이 영화배우 류승룡의 공식 언론 데뷔였다. 긴장되고 수줍어하던 그날의 모습을 이야기하니 류승룡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이어 그날을 잊지 못하는 남다른 이유도 밝혔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면서 오랫동안 연극을 했고, 2004년 '아는 여자'에 짧게나마 출연을 하면서 영화를 하게 됐다. 이후 장진 감독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을 했는데 '거룩한 계보' 당시 기자들이 현장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촬영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장진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이 나를 챙겨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죄수복을 입고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옷도 없었다. 그래서 정재영 씨의 옷을 빌려 입고 처음 기자들을 만났다. 그때의 사진은 일종의 데뷔사진이랄까.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내 눈이 유독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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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은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난타 공연을 하면서 5년간 전 세계 수많은 나라를 다녔다. 그보다 더 무명일 때도 고생은 많이 했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을지 몰라도 연기 자체가 재밌었고 늘 바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류승룡은 연기는 '감정의 노동'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학자들은 지식의 노동을 하고, 예술가들은 창작의 노동을 한다면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는 감정의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다채로운 감정을 품고 있다가 상황과 캐릭터에 맞게 웃고, 울고, 분노하는 여러 가지의 감정을 쏟아낸다. 같은 빨강색이라도 농도에 따라 다른 빛깔을 내듯, 감정도 어떤 울음이냐 어떤 웃음이냐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연기는 '집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벗어나서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빠질 땐 확 빠지고, 나올 때는 한 번에 헤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나도 처음엔 그걸 잘 못했다. 대학교 때는 공연이 끝나면 세트를 부수고 울고 그랬다. 하지만 배우는 그러면 안 된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캐릭터가 얼마나 많은 데. 감정이 내 안에 많이 쌓여있다면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땀 흘려 일하는 것도 노동이지만, 절제를 잘 하는 것도 노동이다. 이제는 그 분리수거에 조금은 능숙해진 것 같다"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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