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정치

[취재파일] 찢긴 '현수막'…누구에게 득일까?

남승모 기자

입력 : 2012.11.30 10:22|수정 : 2012.11.30 10:24


18대 대통령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에 현수막 걸리기 시작했다. 30일부터는 벽보 부착도 시작된다. 현수막과 벽보는 인터넷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선거 공보물이다. 그만큼 추억도 많고 시련도 많았다. 누군가 몰래 낙서를 하는가 하면 찢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은 민주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와 표현의 자유는 한층 신장됐지만 독재와의 투쟁 경험 탓인지 자신과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보다는 배타성이 더 크게 작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87년 민주화 항쟁이 성공한 지 25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2번이나 이뤄낼 만큼 민주주의가 성숙했지만 이런 풍토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27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선거 홍보 현수막이 훼손됐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이미지◈ 잇따르는 현수막 훼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현수막은 광주에서 4건, 울산 3건, 부산 1건, 전남 1건 훼손 사례가 발견됐다.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되지는 않았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현수막도 수도권과 영남 등에서 일부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트위터 등 SNS에는 문 후보의 훼손된 현수막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박 후보 현수막은 대부분 예리한 흉기로 박 후보의 얼굴과 이름 부분을 베인 상태였다. 광주에서 발견된 현수막의 경우 빨간색 페인트 스프레이로 '독재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그네'라는 낙서로 뒤덮여 있기도 했다. 문 후보의 현수막은 담뱃불로 지지거나 현수막을 매단 끈을 잘라낸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

장난 삼아, 혹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호감 때문에 생각없이 현수막을 훼손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이런 현수막이나 벽보 훼손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여 본인이 공무원이라면 더더군다나 신중해야 한다.

---
제240조(벽보, 그 밖의 선전시설 등에 대한 방해죄) ① 정당한 사유없이 이 법에 의한 벽보·현수막 기타 선전시설의 작성·게시·첩부 또는 설치를 방해하거나 이를 훼손·철거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직원 또는 선거사무에 관계있는 공무원이나 경찰공무원(사법경찰관리 및 군사법경찰관리를 포함한다)이 제1항에 규정된 행위를 하거나 하게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미지◈ 현수막 훼손… 지지 후보에게도 역효과

별 생각 없이 혹은 장난 삼아 현수막을 훼손한 게 아니라면 더욱 생각해볼 점이 있다. 굳이 법적 처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훼손된 현수막이 가져올 사회적 반응이다. 훼손 신고가 가장 많은 박근혜 후보 현수막을 예로 들어보자. 앞서 밝혔듯이 훼손된 상당수 현수막에서 박 후보 얼굴 부분을 흉기로 벤 자국이 발견됐다.훼손한 사람의 당초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후보가 지방선거 유세 도중 당한 '면도날 테러'를 연상시킨다. 박 후보에 대한 적개심을 가장 극명하게 표출한 사건으로 당시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이 사건은 당시 지방선거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박 후보가 입원한 뒤 "대전은요?"라고 물은 것이 회자되면서 대전시장 선거의 판도가 뒤집혔다는 말까지 나왔고 실제로 열세로 평가받았던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박 후보에 대한 테러 사건과 현수막 훼손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현수막 훼손도 새누리당 지지층의 불쾌감을 초래하고 그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요소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자기 지지 후보 얼굴이 찢긴 것을 보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 TV 광고로 이 사건을 소재로 채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만은 않다.

현수막 훼손은 당장 내 기분은 풀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선거 결과에 역행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절제되지 않는 분노나 의사 표현은 상대편의 반발을 초래하게 마련이고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본인에 대한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이번 대선의 심판자이자 주인공은 25년 동안의 민주화 시대를 경험한 우리 국민이다. 한순간의 화풀이가 지지 후보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