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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술관 작품 지키기 대작전!

권란 기자

입력 : 2012.11.25 17:26|수정 : 2013.10.29 21:58


아마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미술 전시는 '반 고흐전'일 것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반 고흐'라는 이름과,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등은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고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번 고흐 전시에는 고흐 특유의 화풍이 완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파리 시기의 작품들이 왔습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던 화가,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던 화가의 피나는 노력이 묻어 있는 그림들입니다.

그런데 고흐의 인생과 예술을 생각하며 그림을 보고 있다 보면, 전시장 안에서 '삑~ 삑~' 하는 알 수 없는 전자음이 울려 퍼집니다. 고흐의 그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고흐전에 걸린 그림 앞에는 안전 펜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림에 바짝 다가설 수 없게 해 놓은 것입니다. 원천적으로 보호 장치는 해놨지만, 워낙 유명 작품인데다 고가의 작품이다 보니 안심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림 앞 15cm 정도만 손을 뻗어도 경보음이 울리는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며 동행과 얘기를 나누다 조금만 손을 크게 움직여도 경보음이 울려서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장치는 사실 도난 방지와 더불어, 훼손 방지용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번 한국 전시에 온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은 1978년 한 관람객이 칼로 크게 X자로 찢어놓았던 작품입니다. 간신히 원형에 가깝게 복원이 되긴 했지만, 그 때 이후 물감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작품 한 가운데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그림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X자 상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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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불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금은 지나치다 싶더라도 보안장치 설치는 필수입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순수한 애정’으로 작품을 감상하지만요, 고흐 작품처럼 '대작' 앞에서는 손동작도 자유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작품을 건드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또 하나의 큰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전입니다.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로 '세계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올해 런던올림픽 기념탑 '궤도(Orbit)'의 주인공이 바로 아니쉬 카푸어입니다. 이번 한국 전시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현재 가장 '유명하고 잘 나가는 작가'이다 보니, 전시를 하는 리움미술관 측의 희생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리움의 가장 유명한 공간, 온 전시장이 '까맣다'고 해서 '블랙박스'라고 하는 공간도 카푸어의 작품 전시를 위해 '하얀색'으로 칠해놓았습니다. 또, 벽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카푸어 특유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전시장 벽도 과감하게 뚫었습니다. 카푸어인데, 이 정도의 대우는 당연하다는 것이죠.

카푸어 작품은 사진만 보아서는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작품 사진만 보고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언론에 먼저 전시를 공개하는 '프레스 오픈' 행사에서 카푸어의 작품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묘한 색감의 거대한 작품은 조각이라고도 할 수 없고, 회화라고도 할 수 없는 형태였는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무제'라는 작품 앞에서는 몸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져 그 앞에 서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연의 바다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우스갯소리로 이 작품의 제목을 '미술계의 프로포폴'이라고 짓고 억지로 발을 떼어냈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프로포폴'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이미지                                                      아니쉬 카푸어, 무제, 2012


카푸어의 작품이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을 잊을 수 없어 카푸어의 전시를 다시 한 번 찾았습니다. 카푸어의 명성 덕분인지 미술관에는 많은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다른 작품은 다 제쳐놓고 '프로포폴' 작품 앞으로 달려갔는데, 관람객이 많아서 작품을 보려면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줄을 서서라도 보고 싶었기에 5분 정도 기다렸나 봅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시 작품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작품 앞에 놓여진 안전 펜스 때문이었습니다. 작품과 나 사이에 경계를 쳐 놓고 있으니 작품이 뿜어내는 기운을 바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펜스를 시야에서 치우려고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그때 바로 미술관 직원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결국 처음의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은 다시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가뜩이나 심난한데, 뒤쪽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대여섯 살쯤 되는 꼬마아이가 아빠 품에 안긴 채 울고 있었습니다. '프로포폴' 작품이 보고 싶은데, 어린 아이는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해서 제지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왠지 그 아이의 기분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 아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미술관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안고 들어가도 안 되나요?" 그래도 안 된답니다.

세계적인 작가의 세계적인 작품의 안전을 위해서는 통제가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통제는 때로는 작품에서 받는 행복과 즐거움을 뺏기도 합니다. 만약 펜스가 없었다면, 저는 '프로포폴' 작품의 또 다른 이름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어린아이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면, 꼬마는 작품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미술관 벽도 내어줄 정도의 큰마음을 먹고 연 전시라면, 관람객들에게도 좀 더 배포 있는 관람 기회를 내어줬어도 좋았을 텐데요.

하지만, 작품과의 교감을 우선시하다가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작품, 이른바 키네틱 아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우람 작가의 개인전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국내에서는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동안 선보였던 '기계 생명체' 시리즈 외에도 신작도 선보였는데요, 인간과 신화까지 넘나드는 철학의 세계를 담은 키네틱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작품이다 보니, 관람객들의 호기심이 더 커지나 봅니다. 신기한 걸 보면 아무래도 손이 먼저 나갑니다. 그래서 작동을 멈추는 작품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우로보로스'는 단골 고장 작품입니다. 뱀 머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며 돌아가는 이 작품은 처음과 끝이 하나의 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모양으로, 삶과 죽음이 곧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뱀의 비늘과 머리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돌아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여기에 쓰인 나사만 해도 1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작동은 끝! 멈춰버리는 겁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여러 요인들 때문에 작동이 멈추기가 일쑤인데, 관람객들의 손이라도 닿으면, 뱀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됩니다. 문제는 작동이 한 번 멈추면, 그 원인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나사 1천 개 가운데 뭐가 문제인지 어느 세월에 찾느냐는 겁니다.

이미지                                                      최우람, 우로보로스, 2012


이뿐만이 아닙니다. 역시 이번에 새로 나온 작품, 파빌리온은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파빌리온은 전시장 한가운데 마치 신전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얀색의 좌대 위에 놓인 채 말이죠. 겉에서 보기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안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화,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미지                                                          최우람, 파빌리온, 2012


그런데, 작품 가까이 다가가 보면 유리에는 온통 손자국이 나 있습니다. 심지어 금색 테두리에도 손자국이 덕지덕지 묻었는데,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관람객이 파빌리온의 좌대 위에 다리를 턱 올리더랍니다. 갤러리 직원들이 그걸 보고 놀라서 쫓아가는데, 아무렇지 않게 발을 올리고 신발 끈을 매더라나요. 사실 그 좌대도 작품의 일부인데 말이죠.

갤러리 측은 작품 보호를 위해 펜스라도 칠까 고민했지만, 작가가 원치 않아 그만 뒀다고 합니다. 대신 직원을 좀 더 배치해 '보안'을 강화하고, CCTV를 추가 설치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고 합니다.

작품 보호가 먼저냐, 작품 관람이 먼저냐는 전시 주체와 작가, 관람객의 생각이 다 다를 것입니다. 작품과 관람객이 상호 작용하는 소위 '인터랙티브' 작품이 아닌 이상, 관람객은 작품을 최대한 '존중'하며 감상하고, 전시 주체 측도 관람객의 '작품 감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 예술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역시 미술 감상에 있어서도 최대 덕목은 '상호 존중'과 '예의'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