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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방대 적자생존으로 알아서 살아남아라? - ②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2.11.24 09:29


지방대의 위기는 사실 십수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습니다. 1995년 문민정부는 기존의 대학 인가제 대신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전에는 대학을 설립하겠다고 신고하면 전체 대학수와 지역적 안배 등을 고려해 정부가 인가를 내줄지를 결정했지만 준칙주의로 바뀐 이후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도 변경 이후 1996년부터 지금까지 100개 가까운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덕분에 우리 고등교육 진학률을 OECD 최고인 70%수준에 이르게 됐습니다. 물론 더 많은 국민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면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인한 득보다는 오히려 실이 더 컸다는 평가입니다.

먼저 우리 고등교육의 질적 하락입니다. 대학 설립의 문턱을 대폭 낮춘 결과 부실한 대학을 양산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육 당국은 요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학들까지도 설립하도록 인가를 내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2005년 최재성 의원실이 낸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는 준칙주의 이후 당시까지 설립된 80개 대학 가운데 10개 대학이 설립 요건 기준에 미달됐는데도 불구하고 설립 인가를 받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조건부 충족대학과 지적사항이 있는 대학까지 포함하면 절반이 넘는 44개교에 이릅니다. 결국 부실하게 설립된 대학은 부실하게 운영됐고 심지어 사학비리로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우리 노동시장의 공급과 수요간 눈높이 차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 즉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대학 교육까지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 산업 체계에서 그런 일자리는 한정돼있습니다. 이런 미스매치는 청년 실업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부족한 반면 어떤 산업분야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매는 부조리가 엄존합니다.

셋째,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를 심각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입니다. 만 15세 이상의 생산가능 인구 가운데 우리나라는 22세까지의 젊은이 대다수가 대학교육에 묶여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른 나라에 비해 생산력이 가장 왕성한 7년이라는 시간을 날리는 셈이고 그만큼 국가 경쟁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스위스의 고등교육 진학률은 30%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스위스가 우리보다 노동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막대한 사회적 자본을 들여 '교육 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대학들은 불가피하게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신입생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끝내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쟁이 지방대에 대단히 불리한 체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냥 경쟁에만 맡겨 적자생존하게 한다면 몇몇 국립대를 제외한 지방대는 모두 고사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우선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수도권 편중 현상은 대단히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 탓에 수험생들도 대부분 여건만 되면 서울이나 수도권의 대학으로 진학하기를 원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지방대학에 특별한 장점이나 잇점을 부각시켜주지 못한다면 지방대의 미래는 대단히 암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육당국의 정책은 거꾸로 지방대학에 불리한 실정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나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을 선정하는 지표로 재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 두 지표는 매우 당연하게도 지방대에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두 지표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방대에 평가가 나쁘게 내려지고 그로 인해 재정 지원을 못받거나 심지어 재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에 어려움을 겪게 돼 더더욱 신입생 충원이 안되고, 그러면 더 심한 제제를 받게 되고, 이런 몰락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5년 동안 퇴출된 대학이 모두 지방대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방증합니다.

아울러 BK21이나 WCU(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 등 대학에 대한 중요한 재정 지원 제도들도 '되는 대학에  몰아주기'식이라 서울의 유명 대학에 집중되고 지방대학들은 소외되는 구조입니다. 말 그대로 출발점도 서울 유명 대학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는데다 서울의 대학들은 중간에 타이어도 새 것으로 교체해주고 부스터도 달아주는 반면 지방대학에는 짐만 잔뜩 올려놓은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지방대학들은 다 문을 닫고 서울과 수도권에만 대학들을 모아놓아도 상관 없을까? 깊히 생각해보지 않아도 말도 안된다는데 공감하실 것입니다. 교육의 편중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삼성전자의 모 임원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고급 기술 산업 사업장의 남방 한계선은 충남 탕정이라는 주장을 펼치더군요. 그보다 더 사업장이 내려갈 경우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고급 두뇌를 유치할 수 없어 존속이 어렵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거꾸로 남부지역 공단에 위치한 기업체들은 인력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서울에서 어렵게 적임자를 스카우트 해서 각종 생활 편의를 지원해주며 지방으로 유치해도 3년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탄탄한 지방대가 있다면 상황은 좀 다릅니다.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에 주력 사업장이 있는 포스코의 경우 임원들의 출신 대학 순위를 꼽아보면 지방대인 부산대가 서울대에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방대 전체적으로 보면 임원의 43%를 차지합니다. 서울에서 인력을 유치하기 어렵다보니 주력 사업장을 이끄는 인력은 그 지역에 기반을 닦은 지방대 출신들이고 이들이 사업장의 굵직한 일을 책임져 임원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울산에 주력 사업장이 있는 현대차 역시 지방대 출신 임원이 36.2%에 달합니다. 경북 구미에 큰 공장이 있는 LG전자의 임원도 지방대 비율이 33.5%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풀이됩니다.

지금도 상황이 이럴진대 지방대가 모두 고사한다면 더군다나 어떠하겠습니까. 전 국토의 70%를 버리고 30%에 몰려살 것이 아니라면 지방대를 이대로 고사하도록 버려둘 수 없는 것 아닐까요? 한편으로는 적절하게 구조조정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의 유명 대학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을 육성하는 것,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