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취재파일] 지방대, 신입생 찾아 삼만리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2.11.23 15:38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시의 성산 아트홀 대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 공연이 열렸습니다. 푸치니가 작곡한 라보엠은 '그대의 찬 손', '제 이름은 미미랍니다' 등의 아리아로 대단히 유명한 오페라죠. 이 공연은 국립 창원대의 음악과 재학생들과 동문들이 힘을 모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대학 내부의 행사 쯤으로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관람했는데 공연의 수준이 제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습니다. 각 역할을 맡은 출연진의 성악 실력이나 배역에 대한 소화력, 무대 장치, 연출 등이 웬만한 유명 오페라단의 그것에 필적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공연이 아닌, 제대로 준비된 프로 공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의 관객은 모두 앳된 얼굴의 고교 3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창원대가 창원시와 그 주변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초청해 무료로 관람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창원대가 수능 시험을 마친 지역 수험생들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대학 홍보를 겸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공연 전에 취재를 해보니 참가 학생 대부분은 평생 오페라 공연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페라가 뭔지 잘 모르는 학생들도 상당수였습니다. 많은 학생이 오페라에 대한 관심보다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관람하도록 해 출석을 위해 참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페라 내내 분위기는... 좀 아니였습니다. 오페라 공연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막이 내려올 때까지 모든 관객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날 학생들은 뒤늦게 들어오고, 보다가 중간에 나가고, 옆사람과 잡담하고, 뒤로 몸을 제치고 노골적으로 자고... 무대에서 열정을 다해 공연하는 음악인들에게 제가 다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창원대가 이번 행사에 들인 돈은 적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계산해서 제대로 준비된 오페라 공연의 표값은 아무리 싸게 잡아도 평균 5만 원 쯤 합니다. 공연장의 좌석이 천7백 석이었으니까 어림 잡아도 거의 1억 원에 가깝습니다. 물론 창원대 구성원과 동문들이 마련한 공연이었던 만큼 실제 투입된 자금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해도 봉사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따지면 1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원대가 오페라에 대해 큰 관심도 없는 지역 수험생들을 위해 이만한 돈을 들인 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만큼 대학의 홍보와 이를 통한 우수한 신입생 모시기에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충남에 있는 서원대는 지난 주부터 4주에 걸쳐 도내에 있는 24개 고교의 고3 학생, 8천여 명 전원을 지역의 1급 호텔의 영화관에 초청했습니다. 무료로 영화 관람을 시켜주고 이 대학 동아리들이 각종 공연도 펼쳤습니다. 더 많은 지역 수험생들을 입학 설명회에 참석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지방대는 수험생 초청을 넘어 전국으로 신입생을 찾아 다닙니다. 경남 김해시에 있는 인제대의 경우 교직원 190명을 2인, 또는 3인 1조로 나눠 다음 달부터 연고가 있는 전국 고교 390개 교를 찾아가 입학 설명회를 현장에서 열도록 할 계획입니다. 지역권인 부산과 경남, 울산은 물론 전국에서 신입생을 유치하려는 목적입니다.

앞서 열거한 대학들은 그나마 지방대 가운데는 비교적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아직은 정원 채우기에 걱정하기 보다는 보다 우수한 신입생을 얻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수고 열등이고 다 떠나서 그저 정원을 채우는 것만도 힘겨워하는 지방대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대학의 교수들은 입시철은 물론 평상시에도 신입생 모집 외판원처럼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지

한 유명한 사설 학원의 입시 전략 강사가 들려준 일화입니다.

"최근 충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무료 입시 설명회를 하기 위해 갔다가 경험한 일이다. 해당 학교를 방문하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교직원들이 버선 발로 뛰어나와 맞아주더라. 너무 융숭한 대접에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설명회 전에 차 대접을 받기 위해 교장실에 들어가는데 한 초로의 신사가 교무실 한쪽 구석의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그 학교 교사는 아닌 것 같았고 학부모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3학년생 전원을 강당에 모아놓고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입시 설명회를 한 뒤 작별 인사를 위해 교장실로 다시 들어가는데 그 신사가 여전히 똑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사 끝에 교장 선생님께 여쭤봤다. 저 분은 누구시냐고. 부근 한 대학의 교수라는 대답이었다. 3학년들을 상대로 10분만 입시 설명회를 하게 해달라며 저렇게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어느 학생도 설명회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귀중한 수험생들의 시간을 뺏겠느냐며 잡상인보다 더 귀찮다고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보였다. 그렇게 찾아오는 도내 지방대학 교수들이 너무 많다는 하소연과 함께."

아직은 대학 전체 정원보다 고교 졸업생수가 10만 명 정도 더 많은데도 이렇게 생사의 지경에까지 몰리는 지방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는 점입니다. 저출산 기조로 인해 고교 졸업자수가 매년 급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4년 뒤인 2016년에는 고교 졸업자수와 대학 총정원수가 거의 같아집니다. 2018년에는 역전돼 대학 총정원보다 고교 졸업자수가 1만 명 부족해집니다. 그리고 2020년에는 그 모자란 졸업자수가 10만 명으로, 2024년에는 17만 명으로 껑충껑충 늘어납니다. 대학들이 현재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정원의 3분의 2 밖에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 부족 현상이 모든 대학에 골고루 일어날까요? 물론 아닙니다. 2024년에도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SKY는 수험생들이 서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유명 대학들은 여전히 수대 1의 경쟁률을 보일 것입니다. 신입생 부족의 영향은 지방대부터 집중적으로 받게 됩니다. 한번 정원도 못채우는 이른바 3류 학교로 찍히는 순간 순식간에 폐교까지 몰리게 되는 구조입니다. 지방대들이 신입생 모시기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이해가 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