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기상정보 수집과 수치예보 업무를 도맡아 해온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2호기가 '공짜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
당시 500억원이라는 거액에 도입됐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무상인수 조건에도 선뜻 나서는 곳이 없다.
기상청은 이달 초부터 국내 대학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슈퍼컴 2호기 수요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이전을 원하는 기관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공짜라는 파격적인 조건인데도 가져가겠다는 기관이 없는 이유는 성능에 견줘 유지ㆍ관리가 까다롭고 비용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미국 크레이(Cray) 사의 'X1E' 기종인 슈퍼컴 2호기의 처리속도는 15.7Tflops(테라플롭스)로 도입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16번째로 빨랐다.
테라플롭스는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나타낼 때 쓰는 단위로, 1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번의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하는 속도다.
슈퍼컴 2호기는 그러나 도입된 지 3∼4년 만에 5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0년에는 각각 316.4테라플롭스의 성능을 자랑하는 3호기 '해담'과 '해온'에게 기상청의 메인 컴퓨터 자리를 내줬다.
2호기는 3호기의 안정화를 돕고 전부터 해온 기후변화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 수행하느라 내구연한 5년을 이미 넘긴 상태다.
2호기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구형이 된 것은 슈퍼컴이 국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각국이 성능 개선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이달 발표된 세계 슈퍼컴 순위에서 1위에 오른 미국 '타이탄'의 계산성능은 17.59Pflops(페타플롭스ㆍTflops의 1천배)다.
지난해 11월 1위를 차지한 일본산 'K 컴퓨터'(10.51페타플롭스)에 비해 1년만에 배 가까이 속도가 빨라졌다.
2호기의 속도는 '타이탄'의 1천분의 1 정도이고 순위가 500위 이하로 떨어져 '슈퍼컴'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게 됐다.
하지만 유지비용은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24시간 가동하면 전기요금만 한 해 3억원가량 든다.
최소 330㎡ 이상의 전산실을 갖춰야 하고 기온과 습도 유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기상청은 장애가 발생하면 6시간 안에 고칠 수 있도록 20명 가까운 상주인력을 두며 연간 30억원 안팎을 썼다.
2호기와 성능이 비슷하고 몸집은 훨씬 작아진 요즘 슈퍼컴의 시세는 15억원가량이다.
아무리 공짜라도 2호기를 선뜻 가져가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슈퍼컴 1호기도 비슷한 신세였다.
1999년 200억원을 들여 도입한 1호기 역시 무상인수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수요처를 찾지 못했다.
결국 기상청은 1호기를 해체한 뒤 전시용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를 고철 값인 120만원에 팔았다.
기상청 관계자는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 이전비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음달 초까지 수요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전시용으로 쓰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