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난방도 적게 하는데, 왜 이렇게 난방비가 많이 나올까요?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취재 좀 해주세요.”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때쯤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제보입니다. 실제 사용량보다 난방비가 더 많이 나오는 데는 분명히 많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난방을 많이 했으면서 조금 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 집의 형태에 따라 혹은 지어진 연도에 따라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많은 원인 중에 ‘한 가지라도 제대로 밝힐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오랜 시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하나 둘 찾아보면서 공부하고, 또 모르는 부분은 전문가에게 자문해봤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중요한 제보자 한 분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이 제보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예순 살이 넘은 노인이라 상대적으로 난방을 많이 하고 지냅니다. 딸이 같은 동 아래 층에 사는데, 그 집은 난방비를 아끼려고 우리 집보다 훨씬 더 난방을 적게 해 춥게 지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난방비가 우리 집이랑 똑같이 나와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난방전문가와 함께 제보자 집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제보자는 평소 23도에 맞추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반면, 사례자의 딸은 20도로 맞추고 매우 춥게 지냈습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발이 시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달 청구된 난방비는 14만 6천 원으로 같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문제는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부과하지 않은 것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보자가 사는 아파트는 계량기를 이용해서 난방비를 부과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 전체 난방비를 세대 수로 나눠 일괄 부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00세대가 사는 어느 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아파트 전체의 난방비는 100만 원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100세대 가운데는 난방을 많이 한 곳도 있고, 적게 한 곳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체 난방비 100만 원을 100세대로 나눠 가정마다 만 원씩 부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난방을 많이 한 집은 돈을 적게 내고, 반대로 난방비를 아끼려고 했던 세대만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않은 방식으로 난방비를 부과한 것일까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매달 계량기를 하나하나 검침해서 난방비를 세대별로 차등부과 하는 게 매우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관리규약에는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부과하게 돼 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이 업무를 다 하는 게 쉽지 않은 것입니다. 관리사무소 입장에선 어차피 내야 하는 전체 난방비가 정해져 있다면, 난방비를 세대 수로 나눠서 동일하게 걷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장 난 계량기도 문제입니다. 이 고장 난 계량기에 대해선 제가 이미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만, 계량기의 약 10%는 실제로 사용한 난방비를 제대로 표시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게 계량기를 5년 이상 사용하면 오차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주민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냥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관리사무소 측에선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부과한다고 해도, 실제 사용량에 따라 부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계량기를 믿을 수 없어, 그냥 세대 수로 나눠 일괄 부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아파트는 계량기와 연결된 전선 자체를 끊어 버린 곳도 있었습니다. 계량기가 장식품이 돼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전체 난방비를 세대 수로 나눠 부과하는 중앙난방식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00만여 세대에 이릅니다.
관리사무소에서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차등 부과해야

취재과정에서 조언을 받은 난방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계량기를 사용하지 않고, 세대 면적에 따라서 난방비를 일괄부과하게 되면, 절약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아지게 됩니다. 많이 쓰나 적게 쓰나 어차피 똑같이 난방비가 나오는 데 당연히 많이 쓸 거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결국은 단지 전체의 난방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고, 주민 모두가 피해자가 됩니다.” 저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현재 ‘계량기 설치’는 의무화돼 있지만, 이 계량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선 정확한 규정이 없습니다. 주민이 자체적으로 규약을 만들어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주민 대부분은 관련 규약은커녕 난방계량기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중앙난방식 아파트의 경우, 계량기와 난방비 관리책임을 전문성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넘겨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주민을 위해 관리사무소가 책임지고 계량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이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차등부과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될 때 관리비가 조금 더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용한 만큼 정확하게 난방비를 낼 수는 있어 억울한 피해는 줄일 수 있습니다.
뉴스가 나가고 많은 시청자께서 비슷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만큼 난방비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겠지요. 지금 여러분은 실제 사용한 만큼 난방비를 내고 계십니까? 궁금하시면 지금 옆집 난방비는 얼마나 나왔는지 한번 물어 보세요. 만약, 똑같은 난방비를 내고 계신다면, 관리사무소가 계량기에 따라 난방비를 부과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태원·김용기 박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