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연기 배우요? 재밌어요. 제가 원래 흉내를 잘 내거든요.(웃음)"
염정아(40)가 이렇게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기분좋게 알싸'했고 시원시원했다.
SBS 주말극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 '발연기'의 대명사인 배우 남나비를 연기하고 있는 그를 최근 전화로 만났다.
제목에 이름이 떡 하니 박힌 타이틀 롤이다 보니 염정아는 일주일을 거의 풀 가동해 연기에 올인하고 있다.
"솔직히 연속극이라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할애하면 될 줄 알고 들어왔는데 웬걸,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라며 엄살을 떤 그는 "본의 아니게 촬영이 너무 많아 두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겠죠"라며 웃었다.
최근 시청률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내 사랑 나비부인'은 철부지 남나비의 성장과정을 다룬다.
남나비는 한때 톱스타이긴 했지만 여러 사건사고로 구설에 오르다 비호감 연예인으로 급전직하했다.
인기가 있었을 때도 연기는 너무 못했다.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온 화려하고 도도한 '된장녀'이자, 먹는 된장은 냄새조차 맡기 싫어했다.
이런 남나비를 염정아는 오랫동안 몸에 길들인 옷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얄미울 정도로 능숙한 연기를 통해 남나비의 철없는 캐릭터와 '발연기'를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연기인데요 뭐. 다만 너무 과하게 표현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까 적당히 수위를 조절하며 남나비를 그려내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남나비의 말투나 행동은 실제의 제 모습과 비슷하기도 해요. 처음에 그렇게 설정하지 않으면 제가 6개월을 끌고 갈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연기하기는 편해요."
실제로 염정아의 지인들은 남나비의 모습을 보며 '딱 염정아'라고 말한다.
툭툭 내뱉는 말투나 코믹한 감각은 평소 염정아의 모습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일단 식성과 취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전 된장을 너무 좋아해서 하루 세 끼 된장찌개만 먹기도 해요. 식성은 완전 한식이죠. 또 설마 제가 남나비처럼 철이 없겠어요?(웃음) 된장녀도 아니고요. 하지만 잘 울지 않고 밝은 성격이라는 점과 요리 못 하는 것은 비슷해요. 하하."
드라마는 남나비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교외에서 된장을 만들어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시댁에 얹혀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10일 방송에서는 배우로 재기하기 위해 남나비가 생선장수 역도 마다하지 않고 오디션에 도전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이 장면에서 남나비는 "나도 정말 연기를 잘하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지 않나. 그게 나한테는 연기"라는 배우로서는 '황당한' 발언을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골라요! 골라!'를 외치며 생선장수 연기를 했다.
그러다 결국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장면 찍으면서 나도 뭉클했다"는 그는 "남나비가 앞으로 배우로 성공할지 아니면 다른 쪽으로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마에는 발연기 하는 배우가 놀림감이 되고 인기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는 연예계의 냉혹한 생리와 함께 화려한 여배우도 속절없이 사기결혼을 당하는 이야기가 녹아있다.
남나비는 남편의 정확한 실체를 모른 채 한눈에 반해 결혼했다가 남편에게 배신당한 상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진다.
"외국에서도 있는 일이고 우리 주변에서도 봐온 일들이잖아요. 그래서 남나비가 처한 현실이 개연성이 있죠. 다만 남나비가 네티즌 등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얼굴을 가린 채 익명에 숨어 남을 헐뜯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니까 남나비가 견디고 있지 실제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다행히' 배우 염정아는 남나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2006년 12월 두 살 연상의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 씨와 결혼한 그는 슬하에 네 살 된 딸과 두 살 된 아들을 둔 행복한 주부다.
"사실 제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손이 많이 갈 때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와 드라마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너무 정신없이 살고 있어요. 엄마와 여배우를 동시에 하려니 진짜 힘드네요. 둘째는 아직 제가 뭐 하는지 모르는데 얼마 전 첫째가 '엄마는 왜 배우가 되려고 했느냐'고 묻더니 자기는 절대로 배우를 안 하겠다고 하대요. 엄마를 남나비한테 뺏긴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편하고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다"는 그는 "하지만 다행히 난 주부가 돼서인지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대상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편안해진' 덕분인지 그는 지난해 추석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세네갈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등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주변에 불쌍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좋은 기회를 자꾸 만들어서 힘이 닿는 대로 봉사를 하고 싶어요. 남편이 함께해줘서 많은 힘이 돼요. 남편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또 제가 연예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 피웠지만 데뷔 21년차 배우에게 연기에 있어 양보나 타협은 없었다.
"이 드라마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쉴 거에요. 아이들과 함께할 겁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도망갈 데가 없죠?(웃음) 남나비의 성장기 기대해주세요."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