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관영 언론이 원자바오(溫家寶)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총리의 동정을 일절 보도하지 않아 궁금증이 일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를 제외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 8명은 8일 오전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식에 이어 오후에는 성·직할시·자치구 대표단별로 열린 분임 토론에 참석했다.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위원장은 안후이성,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은 베이징시,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은 쓰촨성,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상하이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산둥성,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은 푸젠성,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은 신장자치구 분임 토론에 각각 참여했다.
상무위원들의 이런 행보는 중앙 언론을 통해 상세히 전달됐으나 톈진시 대표단 분임 토론에 들어간 원 총리 만은 예외였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4면에서 우 위원장 등 7명의 토론 참가 소식을 각각의 기사로 전하면서도 권력 서열 3위인 원 총리에 관한 기사는 다루지 않았다.
관례대로라면 원 총리의 기사가 실려야 마땅한 우 위원장 기사 옆 자리에는 대만 국민당이 축전을 보내왔다는 기사가 들어갔다.
국영 CCTV도 8일 밤 메인 종합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다른 상무위원들의 활동을 개별 리포트로 전하면서 원 총리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관영 신화통신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상무위원들의 활동을 전하면서 특정인만 보도에서 빼는 것은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 관행에 비춰봤을 때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에서 주요 지도자의 보도 누락, 지연 등은 비정상적인 실각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 서기도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총영사관 망명 기도 사건 이후 동정 보도가 빠지거나 지연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축출돼 형사 처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중앙 매체'들이 일제히 원 총리의 활동을 빠뜨린 가운데 그나마 톈진시 당위원회 기관지인 톈진일보만이 9일 원 총리의 분임 토론 참석 소식을 1면에서 전했다.
그러나 톈진일보조차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원 총리인 원자바오가 토론에 참석했다"고만 언급했을 뿐, 원 총리의 발언 내용을 전혀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톈진일보는 톈진시 당 서기인 장가오리(張高麗)의 발언을 장문의 기사에 담아 대조를 이뤘다.
중국 언론계에서는 권력 서열이 높은 사람의 발언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상급자인 원 총리의 발언을 외면하고 하급자인 장 서기의 발언만 길게 실은 것은 '불경'에 가까운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원 총리의 보도가 빠지고 지방 신문에서조차 원 총리의 '목소리'가 배제된 것에 선전 당국의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다만 인민일보, CCTV, 신화통신 등은 원 총리가 8일 오전 열린 18차 당 대회에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참석했다는 내용은 정상적으로 전했다.
원 총리와 관련한 보도에서 이상 기류가 흐르는 이유를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원 총리는 최근 가족의 거액 축재 의혹을 제기한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원 총리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자신과 일가의 재산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고, 당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여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정치체제 개혁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표면화된 것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후 총서기는 전날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서구식 정치 제도 모델을 절대로 그대로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정치체제 개혁 분야에서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평소 줄기차게 정치체제 개혁 요구를 강하게 펼쳐온 원 총리가 전날 톈진시 분임 토론 자리에서 '당의 단합을 해치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원 총리는 공산당에 과도하게 쏠린 권력을 분산하고 국민의 정부 감시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체제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이런 주장은 중국의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언론의 보도 행태로 봤을 때 뭔가 주목할 만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현재로서는 이와 같은 이유를 쉽게 추측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