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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남영동1985' 역사 되풀이 말자는 것"

입력 : 2012.11.07 16:46

"진보-보수 상관없어…박근혜 후보 꼭 봤으면"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전혀 관계가 없어요. 실제 이런 역사를 겪어왔는데 잊어선 안 된다는 거죠. 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대선에서 보수를 선택하느냐, 진보를 선택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남영동1985'를 들고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가 전작 '부러진 화살'에 비하면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욕심으로는 3천만 명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월 13년 만에 내놓은 영화 '부러진 화살'로 344만 관객을 동원한 정지영 감독은 불과 3개월 만에 새 영화 '남영동1985'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해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영화는 고(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자전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잔인한 고문 기록을 담고 있다.

'부러진 화살'에서 사법부를 겨냥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사회에 파문을 몰고 온 감독이 또다시 '남영동1985'로 역사의 아픈 기록을 들춰내 사회의 망각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7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왜, 지금 이런 영화를 세상에 내놓게 됐는지 얘기했다.

"(1985년으로부터) 세월이 한참 지난 시점에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느냐고 물을 수 있겠죠. 내 대답은 이거예요. 이렇게 어렵게 지켜내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마구 훼손되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일인 양 보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 아픔을 이 영화를 통해 경험해봐라, 이 아픔을 겪고 나서도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 여러분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걸 정치 프로파간다로 본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프로파간다를 그런 걸로 보지 않거든요. 그건 영화를 어떤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는 건데, 이렇게 인간이 보편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담아낸 것을 프로파간다라고 하면 이상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이어 그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로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했던 말의 진의를 설명했다.

"그 말의 의미는 솔직히 이 영화가 문재인이나 안철수에게 이로웠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각 후보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중요하고 그 반응에 따라서는 박근혜 후보가 유리할 수도 있고 야당이 유리할 수도 있고 그래요.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성을 국민과 공유하는 일이고요."

그는 만약 이 영화를 단 한 사람만 보게 된다면 누구였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박근혜 의원"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공감할 거라고 봅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영화를 안 봐도 상관없어요."

그가 고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건 오래 전부터였다고 했다.

"'붉은 막'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고문 가해자에 대한 얘기예요. 그 작품을 장선우 감독이 영화화하려고 준비했는데 압력으로 중단됐죠. 소설에 고문실과 집 두 군데가 나와요. 고문실에서는 야만적인 고문 경찰관이 집에 가면 성실하고 따뜻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걸 번갈아 보여주는데 설득력이 있었어요. 그걸 영화로 만들고 싶단 생각을 오래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시고 나서, 더구나 파킨슨병으로 그렇게 된 걸 보고서 '남영동'을 읽었고 '아, 이거(고문) 자체에 충실하자'고 해서 이 22일을 그리게 된 거죠. '관객과 함께 우리 모두 감옥에 갇히자'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대선 일정에 맞춰 영화 제작을 서두른 것이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영화는 일종의 '필'이 꽂힐 때 달려들어야 하거든요.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셨고 '남영동'을 읽었고 그러니까 필이 꽂힌 거죠. 그러니까 시나리오가 한 달 만에 나온 거죠. 막 달려가는 에너지가 나오는데 거기서 멈추면 영화를 못 만들어요."

하지만, 그 역시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과연 영화화가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막연히 고문 장면을 디테일하게 찍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걸 보고 관객들이 아파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내 목적은 관객이 함께 두 시간 동안 밀실에 갇히고 함께 아파해야 하는 건데, 이걸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구체적인 콘티를 만들 때도 확신을 못했고요. 그런데 찍으면서 보니까 이게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고 우선 내가 보면서 힘든 걸 보니까 관객들도 아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찍으면서 노하우를 조금씩 터득해나갔죠."

'부러진 화살'이 영화관에서 내려오자마자 거의 곧바로 '남영동1985' 촬영에 들어가다 보니 출연 배우들도 거의 그대로 또 참여했다.

특히 고문을 당하는 민주화 운동가 '김종태'를 연기한 배우 박원상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그래서 감독은 독해요. 영화감독은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배우를 괴롭히고 그러는데, 그래서 내가 더 아팠죠. 그래서 힘들었던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컷'을 빨리 하고 싶었죠. 그런데 빨리 컷하면 짧은 걸 여러 개 붙여서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박원상이랑 약속을 했어요. 도저히 안될 때 몸부림치라고, 최대한 참아보라고. 다행히 잘 해내더라고요."

영화 속 고문 장면은 수기 '남영동'의 내용을 기본 뼈대로 감독이 실제 그곳에서 고문당한 실존 인물들을 취재해 재구성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자행된 더 끔찍한 고문들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고 했다.

"당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갖가지 고문들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다고 할까 그런 건 피했어요. 가장 보편적인 고문을 선택했죠. 전기 고문은 기술이 필요해서 아무나 하진 않는데 물고문이나 고춧가루, 욕조 고문은 누구나 당하는 거거든요. 볼펜 심으로 성기를 고문하는 거라든지, 바늘로 손톱을 찌르는 거 같은 건 배제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보편적인 고문이라도 얼마나 그것이 인간을 파괴하느냐를 보여주려고 한 거니까. 일부러 다양한 고문 형태를 고문 전시장처럼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의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정해졌지만, 그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12세 이상'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여기 '김종태'의 나신이 무슨 선정성과 음란성을 보이겠어요. 그건 목욕탕에서 애들이 다 본 거예요. 또 고문이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수없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것을 앞뒤 맥락을 정리해서 보여준 것뿐이죠. 이 영화를 보고 애들이 어떤 인식을 할까요? 저런 폭력을 절대 흉내 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지 따라할 거라고는 생각 안할 거란 말이죠."

그는 인터뷰 막바지에 한국 영화계에 쓴소리도 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70%가 넘었다는데 그게 과연 축배를 들 일인지는 고민해 봐야 해요. 양극화 문제, 다양성 훼손 문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 대기업에 줄 서는 영화제작자·감독들의 문제가 그대로인 채, 하나도 극복되지 않은 채 점유율 70%가 된 거죠. 대기업들의 순이익이 최대치가 된 게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양산에서 얻어낸 건데, 이 영화계가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면밀히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