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팀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조사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공식 통보조차 없었다'는 청와대측 반발과 '조사 여부는 합의 사항이 아니다'라는 특검 측의 신경전이 핵심이다. 자칫 진실 게임으로 비치는 이번 청와대와 특검 간 설전의 이유는 뭔가?
◈ 특검팀 "김 여사 조사 방침…靑과 시기·방식 조율중"
지난 5일 특검팀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창훈 특검보는 브리핑을 통해 "김 여사 조사에 관해 보도가 나오는데 조사할 방침이라는 부분은 결정된 상태"라며 "다만 조사 시기와 방법에 대해선 현재 청와대 측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검찰 서면 진술서에서 김 여사의 서울 논현동 땅을 담보로 농협 청와대 지점에서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자금 6억 원을 대출받았다고 진술했는데 특검은 김 여사를 상대로 이 대출과 관련된 내용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특검보는 대통령 내외의 해외 순방 일정이 잡혀 있는데 그전에 조사 얘기가 나오는 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오늘(5일)이나 내일(6일) 조사가 이뤄지기는 힘들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7일부터 11일까지 이 대통령의 인도네시아·태국 순방에 동행한다.
이 특검보는 조사 시기가 12일 이후가 될지는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 대면조사를 전제로 하면 그렇고 서면조사라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또 서면조사를 한다고 해도 어떤 형식으로 질의서를 보내고 언제까지 보내주고, 어디다 보낼 것인지 등 조율할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 靑, "사실관계 달라… 대단히 유감"
특검의 브리핑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가 문제로 삼은 것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특검으로부터 김 여사에 대한 조사를 공식 요청받은 게 없는 데도 김 여사 조사에 대한 시기와 방법을 조율 중인 것처럼 언론에 공개한 것은 명백히 사실 관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특검팀이 지난 5일 오전 방문조사에 대해 민정수석비서관실을 통해 문의를 했지만 그야말로 단순 문의였을 뿐 수사 방식과 시기를 조율한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김 여사에 대한 조사 자체를 합의해 준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 다만 이 관계자는 특검의 공식 요청이 있으면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때 가서 검토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두 번째는 특검팀이 김 여사 조사 여부를 발표한 시기 문제였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가 국가 정상으로서 공식 순방을 나가기 불과 이틀 전에 마치 김 여사가 의혹의 당사자인 것처럼 발표하는 게 도리상 맞느냐는 비판이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발표를 해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국가원수 내외에 대한 예의에 맞지 않는다며 불쾌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세 번째는 역대 대통령 부인에 대한 예우에 어긋난다는 지적이었다. 그동안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적도 없을뿐더러 전직인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사전에 공개하고 조사를 진행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조사를 다 끝낸 뒤 사후에 공개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김 여사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했기 때문에 서류를 확인하고 해당 은행에 알아보면 사실 관계가 다 나온다"면서 "굳이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사안인지도 의문"이라며 특검의 수사 자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 특검팀 "조사 여부는 합의 사항 아니다"
청와대 반발에 대해 특검팀은 (김윤옥 여사의) 조사 여부를 합의해서 정하는 건 아니라며 조사 여부를 합의해서 하는 것으로 비쳤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점잖게 이야기해서 그렇지 특검이 조사하면 하는 것이지 청와대가 동의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특검팀은 이 대통령 내외가 출국하기 전까지 조사방식과 시기에 대해 청와대와 조율을 마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여사에 대한 조사를 놓고 청와대와 특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조율이 쉽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실 김윤옥 여사의 신분은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이어서 특검이 조사 방침을 세웠다 해도 김 여사가 거부할 경우 무작정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 여사 입장에서도 특검 조사 거부가 가져올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 특검 VS 청와대, 진실 게임?
특검과 청와대의 발표를 각각 들어보면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건 아니다. 특검 입장에서는 조사 방침을 세웠고 그에 따라 민정수석비서관실 쪽에 방문조사에 대해 문의한 만큼 이를 '조율'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청와대 입장에서는 특검 측이 브리핑에서 한 말, 그러니까 "조사할 방침이라는 부분은 결정된 상태", "조사 시기와 방법에 대해선 현재 청와대 측과 조율 중"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불쾌했던 것 같다. 아무리 받아야 할 조사라고 해도 조사 하겠다는 공식 통보도 해주지 않고 청와대와 조사하기로 이미 얘기가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법이 어딨냐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 이면에는 야당이 추천한 특검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는 걸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 부인도 조사한 뒤에 결과만 발표하는데 현직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면서 그런 사실을 미리 언론에 공표하는 게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필 국가 정상 외교인 해외 순방을 이틀 앞두고 김 여사의 조사 방침을 공표한 것도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결국 특검과 청와대의 설전은 대통령 내외에 대한 예우를 어디까지 인정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양 측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서로 불쾌감을 나타내면서도 극단으로는 치닫지 않으려 노력도 감지된다. 사실 애초부터 수사하는 쪽과 받는 쪽이 사이 좋길 바라는 게 무리일지 모른다.
다만 가뜩이나 대통령과 그 가족을 상대로 한 특검이 진행되는 것도 낯 뜨거운데 국회가 추천한 특별검사와 국가원수 사이의 신경전이 볼썽 사나운 다툼으로 번지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