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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LH공사를 믿은 참혹한 대가

하대석 기자

입력 : 2012.11.01 10:19

엉터리 공고해 땅 비싸게 팔고 "개인책임"…파산 위기 몰려


집이나 땅을 분양하면서 엉터리로 공고하거나 광고했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식, 공기업인 LH공사에겐 통하는 걸까요? LH공사의 공고만 믿고 땅을 분양받았다가 파산 위기에 놓인 한 은퇴자의 기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혹시 LH공사가 분양하는 토지나 상가에 관심있는 분들은 끝까지 꼭 읽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기업에서 은퇴하고 인생 2막을 준비하던 노모 씨는 모텔 사업에 관심을 갖고 지난 2006년 경기도 화성시의 향남택지개발지구내 상업용지 459㎡를 LH공사로부터 분양받습니다. 당시 이 땅은 LH공사가 배포한 분양설명서에 명백하게 '숙박 및 위락 용도의 상업용지'라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모텔이나 주점 영업을 할 수 있어 당시 주변 일반 상업용지의 2배나 되는 25억 원을 주고 노씨는 이 땅을 분양받았습니다.

노 씨는 25억 원을 가진 부자는 아니었습니다. 노 씨에겐 8억 원의 자금과 서울의 아파트 한 채가 있었습니다. 2006년 당시엔 부동산 경기가 워낙 좋아 은행에선 이 땅을 담보로 무려 17억 원이나 빌려줬습니다. 숙박업이 가능한 땅이어서 17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은행도 판단했던 것입니다. 노 씨는 한 채 뿐인 서울의 아파트를 팔아 건축비를 마련해 모텔 건물을 올릴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노 씨는 모텔사업 전문 컨설팅까지 받은 결과 땅 근처에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을 듣고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열 것이란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건축 허가를 받으려던 2009년 알고보니 이 땅 주변엔 중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겁니다. 때문에 노 씨의 땅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으로 묶여 있어 숙박업으론 허가가 나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숙박업이 가능하다는 LH공사 공고를 보고 주변의 다른 상업용지의 2배 값을 치러야 했던 노 씨는 LH공사에 '숙박업 못 하는 일반 상업용지를 산 셈 칠테니 25억 원 중 절반은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LH공사는 거절했습니다. "노 씨가 직접 잘 알아보고 계약했어야 했다. 이미 계약은 계약인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노 씨는 "당시는 허허벌판이었고 지번도 나와 있지 않아 주변 땅의 등기를 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학교가 들어설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겠냐"고 따져봤지만 LH공사는 '분양설명서에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포함될 경우 용도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따라서 당신 책임'이란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확인 결과 LH공사는 노 씨에게 땅을 분양하기 이전에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해당 중학교가 세워질 계획에 대한 공문을 받았습니다. 추후 LH공사는 "분양설명서를 작성한 외부 용역업체 직원의 실수였다"고 노 씨에게 시인했습니다. 이후 만든 분양설명서에선 '숙박 및 위락용도 상업용지'란 문구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노 씨에겐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계약은 계약이라는 겁니다.

이 때부터 노 씨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됩니다. 먼저 국민권익위원회(예전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는 노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런데도 LH공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권익위 조사관은 "우리 직원들이 LH공사에 여러번 찾아가 잘못된 공고로 인한 피해가 명백하며 민원인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며 보상해줄 것을 설득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당시 LH공사 담당 간부로부터 비슷한 사례가 많아 보상액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어 못 해주는 측면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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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는 분양설명서가 잘못 표기된 점은 LH공사의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LH공사가 수용했습니다. "앞으로는 사업구역 바깥까지 충실히 살펴 정확한 분양설명서를 작성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잘못은 시인하고 내부규정까지 뜯어고치고도 노 씨에겐 한푼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노 씨가 항의할 때마다 LH공사 담당자는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소송은 노 씨에겐 매우 불리했습니다. 땅을 담보로 빌린 17억 원에 대한 이자로 매달 4-5백만 원씩 은행에 내오던 터였습니다. 모텔 사업은 해보지도 못하고 한 채 뿐인 아파트를 판 돈은 고스란히 이자로 들어가던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노 씨는 빠른 처리를 위해 일단 법원에 조정을 신청습니다. 하지만 역시 LH공사는 거부했고 결국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노 씨는 이자 부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변호사 선임도 포기하고 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지난 4월 1심 판결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 씨가 일부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LH공사는 노 씨에게 4억 9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LH공사는 항소했습니다. 소송에서 이기고도 노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하고, 소송을 치르면서 4년 동안 노씨는 총 4억 원에 달하는 이자를 은행에 내며 버텨왔습니다. 소송 기간 중 생계를 위해 해당 땅엔 가건물을 지어 치킨호프집 영업을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을 치르면서 자신은 물론 부인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로 온갖 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호프집 장사가 잘 될 리 없었습니다. 노 씨는 "LH공사는 대법원까지 갈 것 같아요. 앞으로 1-2년은 더 진행될 텐데 저는 곧 이자낼 돈이 바닥나고, 땅은 소송에 얽혀 있어 처분하지도 못합니다. 결국 땅은 경매로 넘어가고 저는 파산하게 됩니다. 소송에서 이기고도 죽는 겁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LH공사의 잘못된 공고가 아니었으면 땅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고, 은행도 17억 원이나 빌려줬을 리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잔인하게 소송으로 내몰고 있습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일 항소심 판결이 나왔고 노 씨는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엔 그가 패소했습니다. 아직 판결문을 받지 못했다며 판결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판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을 만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명 법무법인을 선임한 LH공사와 변호사도 없이 혼자 맨 몸으로 싸운 노 씨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대법원까지 갈지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끊었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이자낼 돈이 없는 노 씨는 사실상 더 이상 LH공사와 대적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만약 상고했다가 또 패한다면 이자로 전재산을 날리고 파산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항소심 판결을 존중해 저는 'LH공사가 잘못했다'거나, 'LH공사를 믿은 대가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거나, 'LH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다만, 노 씨가 한 매우 설득력 있는 한 마디만 전하겠습니다. "부채공화국 LH공사는 자신의 실수로 한 개인이 죽더라도 절대 한 번 받은 돈은 쉽사리 돌려주지 않습니다. LH공사와 거래한다는 것은 투자라기보다는 모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