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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로호 발사 연기는 전적으로 러시아 책임

이상엽 기자

입력 : 2012.10.31 15:58|수정 : 2012.10.31 17:07

사실상 예견된 연기 수순


지난 2009년 8월 1차 시기, 2010년 6월 2차 시기. 두 번 다 제 때 발사된 적 없는 나로호가 3차 발사에서도 역시 연기 수순을 밟았습니다.

정부는 그제(29일) 나로호가 11월 9일부터 24일 사이에 발사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발사 예정일을 일단 9일로 잡긴 했지만, 9일 발사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9일과 24일 사이에 발사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재발사 날짜는 아마도 11월 중순, 그것도 15일을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발사 연기의 가장 큰 이유는 1단 로켓의 하단부에 있는 연료공급 부위에 연결된 헬륨가스 공급관에서 고무로 된 링 모양의 실(seal)이 파손됐기 때문이지만, 정부도 이 문제만은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29일 오후 비행기로 문제의 고무링을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현지 제작업체로 보내 상세한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잘린 단면의 특성 등을 면밀히 조사해 파손 원인을 찾겠다는 겁니다.

현재로서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네 가지 정도입니다.

1) 단순히 해당 고무링만이 결함품이어서 파손된 것이다: 이 경우는 문제가 가장 간단합니다. 여분의 고무링이 있기 때문에 갈아끼워 다시 발사하면 됩니다.

2) 고무링 안의 공급관에 문제가 생겨서 그 압력으로 인해 고무링이 2차적으로 파손됐다: 문제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관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 분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에 따라 해당 부분 전체를 교체할 경우 재발사 준비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발사 예비일로 잡은 24일 전에 발사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전망입니다.

3) 문제의 고무링이 생산된 라인에서 만들어진 여분품들에 모두 결함이 있었다: 이 경우 해당 로트의 제품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라인에서 새 제품을 생산해 나로호에 장착해야 합니다. 역시 시간이 상당 기간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해당 업체에서 제작한 다른 부품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4) 한러 양측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미궁에 빠집니다. 정부가 공언한 만큼 문제의 원인을 찾을 때까지 발사가 무기한 연기될 수 밖에 없고, 24일까지로 설정된 발사 예비일을 넘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론은 이번 주 금요일 열리는 한러 비행시험위원회 이전에 우리 측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러시아의 분석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저는 그 근본 원인으로 러시아 부품의 신뢰도가 높은 수준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최근 러시아의 로켓 발사 성공률이 예전만 못지 않다는 점은 기록으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8월, 통신위성 2기를 실은 러시아의 프로톤-M 로켓이 발사에 실패했고, 그보다 한 해 전인 8월에도 같은 로켓이 발사됐지만 통신위성과의 교신에 실패했습니다. 또 지난 2007년에도 일본의 인공위성을 실은 프로톤-M 로켓이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나로호 1단 로켓을 제작한 러시아 업체인 모스크바의 '흐루니체프'사에서 나로호가 철도를 이용해 울리야노프스크 공항으로 운반되는 장면입니다. 이미지이미지                                               (사진 제공 : 러시아 흐루니체프사)

자세히 보시면 비록 충격 완화장치를 장착하긴 했지만 매우 허술한 트레일러에 실려 있습니다. 러시아의 철도 사정을 감안하면 공항까지 몇 시간을 덜컹덜컹거리며 실려 왔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렇게 도착한 나로호 1단은 한국에 와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김해공항에 내리자마자 특수 무진동 트레일러와 선박편에 실려 조심스레 나로우주센터로 운반됐고, 상단을 결합한 뒤에는 뉴스에서도 보셨듯 사람 걸음걸이보다 느린 속도로 조심조심 발사대로 이송됐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만약에 부품에 손상이 갔다면 이미 러시아에서의 운반 과정에서 발생했을 겁니다. 저는 이 사진이 최근 러시아의 품질 관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과거 냉전 시대 러시아의 우주/국방기술을 책임졌던 전문 기술자층이 더 높은 보수를 주는 직종이나 민간업계로 이직하면서 이같은 품질 저하 현상이 더 가중된다고 말합니다.

실제 나로호 발사에 종사하는 국내 과학자들은 나로호에 들어가는 전자기술들은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구식 기술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켓에 필요한 기술은 다기능, 고속보다는 무엇보다 신뢰도가 우선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볼 때는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부품이라도 러시아에 1단 로켓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대로 쓸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 29일 나로호 3차발사 관리위원회가 열린 뒤 오후 기자회견에서 저는 "이번 고무링과 같은 제품이 러시아의 다른 로켓에도 장착돼 있는지, 또 문제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항우연 김승조 원장은 '지금까지 이 제품을 수없이 많은 로켓에 사용했지만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러시아 측이 답변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답변이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켓 개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뢰성입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기반기술을 갖고 있어도 로켓을 당장 개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재나 합금기술, 전자 IT기술이 뒤쳐져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지는 로켓 개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개선, 또 실패와 개선을 무수히 반복해야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신뢰성'을 비로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로켓 개발에서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다'는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의 그 제품 또한 이번 나로호를 통해서 결국은 '문제가 있는', 아니면 최소한 '불량률이 높은' 제품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발사 연기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수만 가지 부품이 들어가는 로켓 개발에서 앞으로도 이같은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작은 고무링 하나까지라도 신뢰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하지만 국방부에 납품하는 미사일이나 군용물품 비리를 보고 있자면 당장 우리부터도 손을 봐야 할 부분이 하나 둘은 아닌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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