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1주일여를 앞두고 선거인단제도(Electoral College)가 큰 변수로 부각되면서 개헌 논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50개주 가운데 메인,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48개 주의 경우 '승자독식제(winner takes all)'를 통해 선거인단을 선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 방식을 적용한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28일(현지시간)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전국 득표수에서 53만표를 더 얻고도 플로리다주에서 300여표 뒤지면서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몽땅 잃고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에게 패배한 2000년 대선을 상기시키면서 올해 대선 결과에 따라 개헌론이 터져 나올 가능성을 지적했다.
물론 2000년 당시에도 선거인단 폐지론이 터져 나왔으나 막상 부시의 당선이 최종 확정되자 흐지부지됐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엄존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선거인단 제도가 국민 전체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다 과거와는 달리 교통ㆍ통신이 발달해 전국 각 지역에서 직접 유권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무엇보다 대선후보들이 유권자 성향이 이미 드러나 판세가 결정 난 지역보다는 경합주들만 뻔질나게 찾아다니며 선거운동을 벌여 다른 지역 유권자들을 소외시키고, 이들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워싱턴포스트(WP)는 이달 초 오하이오,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 10개주(州)만으로 이뤄진 미국 지도를 만평란에 게재해 시선을 끌었다.
나머지 40개주는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미경합주국(United swing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을 단 이 만평은 10개 경합주가 미 대선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풍자하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번 대선도 10개 안팎의 경합주가 대세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00년 당시는 대법원이 개입해 부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번엔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의 여론조사 추이를 감안하면 선거인단 투표에서 269대 269로 동률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도 전혀 무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럴 경우 대통령은 하원에서, 부통령은 상원에서 각각 선출하는 만큼 자칫 공화당의 롬니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이 부통령이 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질 개연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결국 이 제도 때문에 미국이 또 한번 극도의 혼란기를 맞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면서 오바마 등 이 제도 존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력 정치인들의 과거 발언에 주목한다.
의회 소식지인 '더 힐'(The Hill)은 지난 2000년 대선 직후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 민주당 소속의 찰스 슈머, 리처드 더빈, 제시 잭슨 주니어,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 등이 선거인단제도 유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원에 도전했던 지난 2004년 공화당 알랜 키스와 TV 토론때 선거인단제도 존폐 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고 "현단계에선 고장났다"며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클린턴 국무장관도 2000년 대선 직후 상원 당선자 시절 기자회견에서 "선거인단 제도가 200년전 도입될 당시와 지금은 너무 차이가 난다"면서 "민주주의에선 무엇보다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따라서 대통령 직선제로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폐지론에 찬성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대선 직후 이 제도로 인해 대통령에 낙선했음에도 선거인단제 지지 입장을 고수했으나,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승자독식제가 경합주가 아닌 다른 주들 유권자 표심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폐지론 쪽에 가담했다.
반면 조 바이든 부통령과 공화당의 오린 해치, 미치 메코넬 의원, 민주당의 패티 머래이 의원 등은 선거인단제 존치론에 무게를 실었다.
일부 모순점이 발견되고 있지만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만든 헌법에 손을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특히 36년이나 의정생활을 한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 1979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결의안에 부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편, 2000년 논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부인 힐러리 여사가 선거인단제 폐지 발언을 한 뒤 이 제도에 대한 찬반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태도를 보였다.
폴 라이언 공화당 부통령 후보도 2000년 대선 직후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300여표 더 많이 획득한 계기 검표 결과를 고어가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법정 다툼을 통해 선거 결과를 확정지으려는 고어 진영을 비난했었다.
이처럼 미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감안하면 내달 6일 대선 결과에 따라 선거인단제 존폐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될 수 있는 분위기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