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자백'으로 해결한 미제 사건…진범 맞나?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그의 자백 말고 새로 확보한 증거가 없습니다. 경찰 브리핑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인데,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 감식 시료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답변은, 8년 전 수사한 강동경찰서에서 4백여 건의 감식 시료를 넘겨받아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는데, 이 씨의 것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씨를 공범으로 지목한 양심고백 당사자의 DNA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주부가 살해된 아파트의 집안과 주변 복도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담배꽁초 등에서 아무 것도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씨가 사건 당일 그 범행 현장에 갔다는 정황 증거가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이 씨는 광진경찰서 조사에서, ‘누워 있는’ 주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부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는 다릅니다. 시신에 난 상처의 깊이와 각도 등을 분석하면, 범인과 피해자의 자세를 추정할 수 있는데, 2004년 국과수와 경찰의 판단은 범인이 ‘서 있는’ 주부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입니다. 국과수의 분석이 틀린 걸까요, 아니면 8년 지난 이 씨의 기억이 흔들린 걸까요, 진술은 정확히 한 걸까요? 그가 필로폰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억의 정확함과 진술의 일관성에 좀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피해 여성의 자세까지 오락가락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사건 보도는 이래서 상당히 고민스러웠습니다. 경찰이 검거한 모든 ‘피의자’는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는’ 사람이지만, 많은 경우 범행 현장의 CCTV나 똑 떨어지는 DNA 때문에, 기사에서 의심이 아니라 확실한 범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자발찌를 차고 주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게 아니라 정말 '살해한' 서진환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검거돼 말만 ‘피의자’지 아예 ‘범인’이라고 쓴 언론도 다수였습니다. 나주에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가 아닌, 정말 성폭행한 고종석도, 피해 아동으로부터 그의 DNA가 검출돼 재판 절차만 남았을 뿐, 부인할 수 없는 범인으로 간주됐습니다.
반면, 명일동 주부 살해 사건은 이와 다릅니다. 죽기 전 양심고백을 했다는 사람은, 경찰이 피의자 진술조서를 받지도 않았고, 범인으로 지목된 이 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궁에 자백했지만, 본인도 자신의 범행이라는 걸 입증할 만한 증거가 마땅치 않습니다. 아파트 CCTV도 없고, 주변 CCTV도 없고, 진술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8년 전 수사팀의 용의선상에 오른 적도 없습니다. 8년 미제는 단번에 해결됐지만, 경찰 수사에 다소 회의적인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진범이 맞나? 자백만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풍기면서 보도했습니다. 그는 정말 ‘피의자’인 것입니다. 물론 그의 자백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고, 정황상 강도살인죄가 인정될 수도 있지만, 그를 확실한 범인으로 보도하는 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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