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정치

[취재파일] 박근혜, 한 마디가 아쉬운 이유

남승모 기자

입력 : 2012.09.18 17:32|수정 : 2012.09.18 20:27


총선이 끝난 지 열흘쯤 지난 4월 23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승리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공약 실천 약속차 강원도를 찾았다. 박 전 위원장은 강원도당을 찾아 총선공약 실천본부 출범식을 가진 데 이어 원주의 전통 시장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등을 방문했다. 강원도 구석 구석을 누비는 박 전 위원장을 따라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검찰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트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거액의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한다고 하니 박근혜 위원장에게 반응을 따보라는 얘기였다. 안 그래도 기자들 사이에서 오늘은 어떤 질문을 할지 조율 중이었던 터라 최 전 위원장 관련 질문을 넣자는 제안이 나왔고 곧 채택됐다.

당시 검찰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사업의 시행사인 파이시티 전 대표 이모 씨가 지난 2007~2008년 최 전 위원장에게 인허가 청탁을 해달라는 명목으로 건설업체 사장인 브로커 이모 씨에게 10여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은 금품을 받은 것은 일부 사실이지만 청탁 대가는 아니었다며 뇌물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 최시중 비리 의혹, "예외 없이… 법대로"

박 전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격려차 경기 예정지를 방문했을 때 기회가 왔다. 기자들이 빙 둘러싼 가운데 박 전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질문이 나갔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007년 당시 이명박 캠프의 여론조사에 남의 돈을 일부 썼지만 대가성은 없었다고 한다며 뇌물 의혹에 대해 물었다.

박 전 위원장은 "그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답했다. 또 당 차원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잘못한 것은 누구나 예외없이 책임질 일은 져야 한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즉각 논평이 나왔다. 새누리당은 "검찰은 최시중 전 위원장의 혐의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로 단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면서 "최 전 위원장도 누구로부터 무슨 명목으로 얼마 만큼의 돈을 받아 어디에 썼는지 사실대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진실 공개를 요구했다.
이미지
또 "최 전 위원장이 건설브로커 이모씨로부터 받은 돈을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그가 돈의 대가성을 부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불법자금 수수 혐의는 여전히 남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 식구 감싸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섯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7일, 이번엔 새누리당 핵심 인사의 비리 연루 의혹이 터져 나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박근혜 경선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내부 고발로 시작된 이번 의혹 사건에서 홍사덕 전 의원은 중소기업체 사장 A씨로부터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날, 올해 3월 3차례에 걸쳐 6천만 원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A씨가 올 3월 홍 후보의 종로 사무실에 찾아가 홍 후보에게 인사를 한 뒤, 미리 준비해간 현금 5천만 원을 건넸고, 또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도 30만 원 상당의 고기 선물세트에 현금 500만 원씩을 넣어 홍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홍 전 위원장은 A씨의 부하 직원이 신고 포상금을 노리고 꾸민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홍 전 위원장은 다음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억울하지만 대선을 앞둔 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탈당을 선택했다는 설명이었다. 홍 전 위원장은 또 검찰 수사를 빨리 조속히 끝내달라면서 수사가 마무리돼 무고함이 밝혀질 때까지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덧붙였다.

내부 고발자나 홍사덕 전 위원장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언론의 관심은 또 한번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입에 쏠렸다. 마침 박 후보는 그날 저녁 세계여성단체협의회 세계총회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기자들은 행사장 앞에 진을 치고 박 후보를 기다렸다. 박 후보가 도착하기에 앞서 박 후보 측 관계자들과 일문일답에 대해 조율을 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날 기자들이 준비한 질문은 홍사덕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과 함께 이틀 뒤로 잡힌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기자회견,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출에 대한 입장 등이었다. 박 후보측 관계자들은 홍 전 위원장 건은 확인된 게 없고 안 교수 기자회견도 출마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굳이 할 필요 있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 홍사덕 비리 의혹, "......."
이미지

박 후보는 오후 7시쯤 모습을 드러냈다. 박 후보 측과 조율이 안 됐으니 그냥 물어보기로 현장에 있던 기자들과 의견을 모았다. 박 후보는 행사 관계자들과 인사하며 보도진을 지나쳤다. 기자들이 붙어 질문했지만 일체 답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나올 때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행사장을 빠져나가면서도 취재진의 질문에 함구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한마디라도 들으려는 취재진과 박 후보와 인사하려는 행사 참가자들이 뒤엉키면서 몇몇 사람들이 넘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물론 박근혜 후보가 취재진의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측근 비리 의혹이 터진 마당에 일체 답변을 하지 않는 모습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난 17일의 박 후보의 태도는 지난 4월 최시중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이 터졌을 때와는 확인히 대비된다.

박 후보가 홍사덕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건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답을 하지 않은 결과 해석의 여지를 남겼고 그에 따른 부담 또한 박 후보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홍사덕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따져 봐야 한다. 홍 전 위원장이 조속히 검찰 수사를 마무리 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자신의 결백을 알리고 박 후보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홍 전 위원장의 결백을 믿었다면 오히려 박 후보가 본인이 나서 지난 4월처럼 최시중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이 터졌을 때처럼 "법에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 "잘못한 것은 누구나 예외없이 책임질 일은 져야 한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한마디가 아쉬운 이유
이미지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된 뒤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임명했다. 안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대통령 친인척, 측근 비리 척결을 외쳤다. 지난 12일에는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 권력실세 등을 특수관계인으로 지정해, 국회가 추천하는 인사가 이끄는 독립된 기관이 특별 감찰하는 제도, 즉 특별감찰관제를 입법화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이 완벽해도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없다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게 마련이다. 박 후보의 한마디가 아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