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취재파일] 누가 재벌가 며느리들을 외국인 학교에 달려가도록 부추겼나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2.09.14 19:29|수정 : 2012.09.14 19:29


'왜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나.' 80년대 후반 크게 유행했던 한 대중가요의 가사 일부분입니다. 우리 교육 문제를 취재하다보면 이 가사를 떠올릴 때가 꽤 많습니다. 외국인학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출입기자로 있을 때 우리 교육 당국이 '외국인학교 설립 완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크게 느꼈던 불편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을 믿고 맡길 만한 학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과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학교의 설립 문턱을 크게 낮추겠다고 나섰습니다. 외국인만 설립할 수 있었던 자격 조건을 외국 법인, 나아가 국내 법인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 국내에서 얻은 수익금을 본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게 했습니다. 쉽게 말해 외국의 유명 교육기관들이 우리나라에서 교육 사업을 벌여 돈을 벌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외국인 자녀 만으로 학교의 정원을 채우기 힘들 수 있으니까 정원의 30%는 내국인을 받을 수 있도록도 했습니다. 아울러 사실상 내국인이더라도 부모 한 쪽, 또는 자신이 외국인(이중국적자도 해당)이면 외국인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와 함께 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했어야 주어지던 입학자격 요건을 3년으로 낮춰줬습니다.
이미지
어라, 저는 듣는 순간 걱정이 됐습니다. 외국인 학교가 외국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일부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귀족학교'가 될 수 있겠는데. 제 걱정에 당시 교과부는 이렇게 대답하던군요. 그래봐야 외국인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국인 수는 몇백 명 수준으로 전체 학생의 0.1%에도 못 미친다고. 또 어차피 그런 아이들은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나게 될텐데 그렇게 외화를 낭비하느니 국내에서 수요를 해소하는 게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그러면서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들을 유명 외국 교육기관에 내주고, 심지어 서울시가 직접 나서서 미국 뉴욕 맨해튼에 본교가 있는 명문 교육기관을 유치해오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어찌됐나요? 정작 이들 교육기관을 쌍수 들고 환영한 것은 외국인들이 아니라 국내 재벌가 며느리, 딸, 고액 연봉자의 안주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내국인 정원 30%(일부는 20%)를 채우고도 넘쳐 심지어 돈으로 위조 국적을 사서 자녀를 해당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이미지
이 학교들 뿐 아니라 내국인 비율 30%를 지키지 않는 외국인 학교가 3분의 1에 달하고 이중국적자, 외국 거주 3년 이상인 사실상의 내국인을 포함하면 80~90%가 한국인인 '무늬만 외국인 학교'도 수두룩 합니다. 이런 학교의 1년 학비는 2천만 원에서 5천만 원까지입니다. 만약 초등학교 1학년으로 들어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닌다면 적어도 2억5천, 많게는 6억 원 넘는 수업료를 내야 합니다. 당연히 부유층, 그것도 최상위 부유층 자제들만 모였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귀족학교'가 된 셈입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니 4년 전 우리 교육당국은 많은 것을 간과했습니다. 어린 자녀를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게 하기 꺼렸던 부모들까지 외국인 학교를 선택하게 부추긴 셈입니다. 외국의 유명 학교라는 이름값에 혹하도록 만든 셈입니다. 친구 자녀들이 외국인 학교에 들어가니 내 자녀도 집어넣어야겠다는 경쟁심에 기름을 끼얹은 셈입니다. 우리나라식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있음을 환기시켜준 셈입니다. 결국 어차피 조기유학에 나섰을 아이들 뿐 아니라 가만 놔뒀으면 국내 학교에서 공부했을 아이들까지 외국인 학교로 몰려들게 만들었습니다.

교육당국의 중대한 실책은 또 있습니다. 뻔히 예상됐던 외국인 학교 관련 문제들에 대해 어떤 대응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학교들은 교육당국의 관리, 감독에 있어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를 비롯한 아무런 관리, 감독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 당국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을 뿐더러 학력 인정도 받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외국인 학교의 운영 실태는 정말 가관입니다. 그 문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입학 비리로 문제가 된 외국인 학교들은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조된 여권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이미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과연 그럴까요? 알아보니 대부분의 외국인 학교는 입학자들에 대해 면접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겉보기에 완전히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온두라스, 니카라과, 시에라리온 같은 황당한 국적을 갖고 찾아오면 그걸 검증할 수 없을까요? '니카라과 어디에서 살았니, 시에라리온 내전 때 너는 어떻게 지냈니?' 한 두 가지만 물어봐도 사실 여부를 손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요. 검찰이 수사로 밝혀내야 할 일입니다. 어떻든 일부지만 우리 자녀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곳을 교육당국은 아예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경제 이치죠. 많은 외국 교육 기관들이 한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인 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얼마나 더 많은 귀족학교가 세워질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재벌 며느리, 딸, 부유층 안주인들이 외국인 학교로 달려가도록 부추긴 셈인가요? 국적 위조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나요? 저는 우리 교육당국 같은데, 저만 그런가요?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