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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일 갈등에 중재…'불개입' 포기?

입력 : 2012.09.10 01:36

클린턴 美 국무, 한일 양국에 "온도 낮추라" 충고
중국 견제 위한 핵심 동맹국 갈등 방치할 수 없어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갈등 해소를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 행보에 나서 주목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9일 독도 영유권이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한국과 일본 양국에 대해 "온도를 낮추고 협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와 별도로 만나 영토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스스로 밝힌 상황이어서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더욱 외교적 의미가 크다.

이는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철저하게 '불개입 원칙'을 고수해온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발언이다.

그만큼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인식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한일 수교 이후 미국 정부는 확고한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며 중립적 입장을 취해왔다"면서 "하지만 최근 기류는 미국의 전략과 국가 이익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범세계적으로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분열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전략으로 읽힌다.

지난 6월 열린 한미 `2+2(외교+국방장관)회담' 당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촉구했다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게다가 6자회담은 물론 미국의 대북 정책 수행에서 한일 갈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특히 한국 내에서 반일 정서가 강해지면서 과거 식민지 지배라는 동병상련을 안고 있는 중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미국은 경계하는 듯하다.

자칫 한국이 중국 견제 전선의 일원이 되는데 부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일 갈등을 조기 진화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 이전에도 미국은 한일 양국을 상대로 갈등의 조기 진화를 위해 물밑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클린턴 장관의 아시아 지역 순방과 관련된 백브리핑을 한 국무부 당국자는 "최근 한일 양국 간 일련의 긴장 사태는 미국 등의 우려를 초래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며 "우리는 다시 한번 (양국에 대해)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제(restraint)와 침착(calm), 정치력(statesmanship)'을 발휘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의중을 파악한 한일 양국도 일단 화답의 몸짓을 보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8일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 때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장관과 만나 "현재의 한일간 상황을 될 수 있으면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해 상호 냉정히 대응해 나가자"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어 이 대통령과 노다 총리가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처음으로 9일 만나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데 협력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한국의 일본 전문가들과 비공식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일왕 사죄'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설명했다고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적극적 중재와 한일 양국의 호응으로 한일 갈등 기류는 이제 봉합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전격적인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의 갈등을 일으켰다가 미국이 중재에 나서자 서둘러 일본과 화해한 모양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임기 말에 국내 정치적 요인으로 튀는 행동을 했다'는 인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 정부가 한일 관계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게 한 것도 향후 외교적 후유증을 자아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대해 의심과 불확실성을 제기하는 행위는 아시아는 물론 미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의 이익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미국이 다시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은 물론 특정 국가를 향해 '잘못된 일'이라고 꾸짖을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특히 클린턴 장관은 "조용하고 절제된 접근법을 취하도록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복잡하게 얽힌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수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교한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강조한 대로 조용하고 절제된 외교가 지속되는 한 미국은 한일 관계에서 가급적 불개입 원칙을 유지하면서 3국 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