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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난장판 된 성폭행 현장검증, 왜 이러는 걸까요?

박세용 기자

입력 : 2012.09.03 10:02|수정 : 2012.09.07 15:08

- 아수라장 된 어린이 성폭행 현장검증…여론재판으로 둔갑한 통과의례일 뿐


고종석 현장 검증, 왜 이러는 걸까요? 나주 초등학생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현장 검증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취재진만 100명을 넘었고, 분노한 이웃들의 뜨거운 취재 열기까지. 그 순간, 지구상 최고 인구밀도였다고 장담합니다. 나주 경찰은 질서정연하게 현장 검증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나 봅니다. 정말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흔한 노란색 폴리스 라인도 안 쳤습니다. 취재진은 그 노란색 선만 있어도, 경험칙에 따라 넘어가지 않습니다. 좀 더 가까이서 찍어보겠다는 한 명의 어긋난 욕심이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수없이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나주경찰은 폴리스 라인 대신 '인간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경비 병력을 동원해 피의자가 움직일 수 있는 길을 트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고종석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인간 라인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지도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취재 제한 장벽이 만들어진 겁니다. 수많은 카메라의 렌즈를 경찰 인간벽이 다 막아버렸습니다. 현장 경찰은, 촬영을 위해 허리를 좀 숙이라고, 상관이 지시하지 않는 이상, 꿈쩍도 안 했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금단의 폴리스 라인만 쳐놓았으면 간단한 것을, 경비 병력만 벌떼처럼 동원하고, 기자들은 못 찍으면 회사 가서 죽는다, 전쟁터가 만들어졌습니다. 몸싸움과 고성만 오가고, 사람들이 뒤죽박죽 뒤엉켰습니다.

이 때부터 현장 검증은 대충 대충 진행됐습니다. 경찰은 고종석이 범행 직전 들른 PC방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PC방 사장이 경찰 못 들어오게 문을 잠갔기 때문입니다. PC방 앞에 도착한 경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PC방 출입문 앞 길가에 잠깐 서 있다가, 고종석을 데리고 부랴부랴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피해 어린이 집 앞에서는 더 대충 했습니다. 아이 마네킹과 납치할 때 썼던 이불을 경찰이 들고 뛰어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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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현장인 다리 밑에서는, 이제 경비 병력도 없어서, 현장 검증은 완전 난장판이 됐습니다. 여야가 치고받는 국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영상 취재기자가 밀리고 밀리다 다리를 다쳤고, 카메라 부품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과학수사'한다는 경찰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느라 바빴습니다. 검증은 무슨, 하는 둥 마는 둥. 왁자지껄한 현장 검증은, 대체 뭘 검증했다는 건지,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온몸만 땀으로 뒤범벅됐습니다. 영상 취재기자는 다리에 파스를 뿌렸습니다.

이런 엉터리 현장 검증, 왜 하죠? 경찰의 과욕 때문입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범인을 잘 잡았다는 걸 과시하려는 욕망입니다. 나주경찰은 고종석을 8월 31일 오후 1시 20분쯤 순천에서 검거해, 오후 3시쯤 나주 경찰서로 압송했고, 저녁밥을 먹인 뒤 피의자 조사를 시작해, 자정을 조금 넘겨 조사를 끝냈습니다. 이후 유치장에서 잠을 재운 뒤 오전 11시에 다시 데리고 나와, 수많은 기자들 앞에 세워놓고 현장 검증 한다고 끌고 다녔습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현장 검증은 도무지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취재 질서 유지는 나주경찰의 관심 밖이었고, 현장 검증은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취재진 집단은 자생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유기체가 아닙니다. 단 한 대의 카메라만 포토라인을 넘어도, 질서가 와장창 깨지고 마는 아슬아슬한 집단일 뿐입니다. 통제와 관리의 대상입니다. 현장 검증 직후 나주경찰서장이 SBS 중계차 앞에 와서 알은체하기에, 이런 쓴소리를 했더니 서장은 듣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현장 검증, 해야 했을까요? 의문이 남습니다. 현장 검증은 형사소송법에 근거하는데, 215조를 보면, 범죄 수사에 필요한 때 경찰이 현장 검증을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범죄 수사에 필요한 때'가 어떤 때인지 추가 규정은 없지만, 대략 피의자 자백만 갖고 범죄를 입증하기 어렵고, 결정적인 물증이 필요하다거나, 피의자 진술에 모순이 있다거나, 이런 경우겠죠. 그런데 경찰은 현장 검증 전날, 이미 피의자의 자백 + '결정적인 물증'까지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피의자가 입고 있던 속옷에서 피해 아동의 혈흔이 발견된 것입니다. 피해 아동으로부터 피의자의 DNA도 검출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피의자 진술은 일관됐고, 모순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이불째 납치해 영산강변에 데리고 간 뒤 성폭행했다, 범행 과정도 단순합니다. 자백, 물증, 진술의 일관성, 이 모든 걸 확보해놓고 현장 검증, 왜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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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검증이 이제 범죄 수사의 목적과 무관하게, 경찰과 시민과 언론이 합동 진행하는 공개 처형쇼가 됐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흉악범이 거치는 한국적 통과의례입니다. 사법 재판을 받기 전, 피의자를 수많은 카메라와 대중 앞에 세움으로써, 일차적인 여론 재판 겸 망신주기를 하는 셈입니다. '이 죽일 놈의 XX!' '염병할!' 피의자에 대한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가운데, 특히 '모자 벗겨버려라!' 그러니까, 얼굴을 드러내 공개적인 망신을 주자, 비난을 퍼붓자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 검증을 지켜보는 시민은 모두 여론 재판의 재판관입니다. 경찰이 수갑과 포승을 채운 죄인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은, 서양의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지루한 사법 재판 이전에 화끈하게 공개적 여론 판을 하는 것, 돌만 안 던지지, 옛날과 똑같습니다. 치열한 몸싸움, 녹초가 된 몸. 현장 검증이 여론 재판으로 둔갑하면서, 언론의 현장 검증 보도도 여론 재판 중계에 그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현장 검증 결과, 새로 드러난 팩트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