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전쟁 상황도 아니고, 3년 동안 55명이나 죽어나가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전기 배전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가 띵했습니다. '전봇대 위 감전사고'를 왜 그동안 단순 사건사고로만 보도했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경향성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배전공들의 반복적인 죽음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은 전봇대 위의 배전공들이 2만2천9백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깃줄을 만지며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리고 그들 중엔 한국전력 직원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나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사안이 사실은 굉장히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전봇대 잔혹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 2만2천9백 볼트 고압선에 生死를 맡기다
'무정전(無停電) 작업', '활선(活線) 작업'은 쉽게 말해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하는 작업입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따지고 들면 둘은 다소 개념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그 반대 개념은 '정전(停電) 작업'이겠지요.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정전 작업'을 할 때 감전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업 방식이 '무정전'으로 바뀐 뒤부터 배전공들의 감전사고는 시작됐습니다.
작업 방식을 결정한 주체는 한국전력입니다. 한전은 '무정전 방식'을 도입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전 방식을 택하면 그 일대 가정집에 전원이 끊어지는데 이를 참아줄 수 있는 주민은 없다"는 것, "무정전 방식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사용 중인 기술"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 언뜻 이해는 갔습니다. 전기가 나갔을 때 불편함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전의 변(辯)을 찬찬히 뜯어보면 황당합니다. 사람 목숨보다 정전 민원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정전 방식'이 작업자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속적으로 알려 주민들을 설득할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한전은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 가정엔 전기를 차단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압선 작업 구간을 흐르는 전류를 충분히 선택 차단할 수 있을 법한데 그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더 황당합니다. '무정전 방식, 활선 방식'이 선진 기술이라고 밝혔습니다. 안전한 기술인데 배전공들이 안전 수칙을 안 지켜 사고가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해서 알아보니 그 기술이 미국과 일본에서 상용되는 방식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고압 전류를 끊지 않고 작업을 하되 사람이 직접 고압선을 만지지 않고 도구(스틱)를 이용한 간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전은 분명히 이 같은 내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전 수칙 준수 여부도 그렇습니다. 3년 동안 1천4백여 명이 숨지거나 중상을 입고 있는데 언제까지 '안전 수칙'을 들먹이며 배전공 탓만 할 겁니까?
## 배전공들 "나는 한전 직원이 아니다"
우리가 가끔씩 목격하는 전봇대 위의 배전공들은 한전 직원이 아닙니다. 이들은 한전의 전기 공사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가 고용한 사람들입니다. 한전은 2년마다 한 번씩 하청업체와 계약을 하며 갖가지 지침을 내립니다.
그런데 2011년도 업무 지침서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이상한 벌점 제도가 있었습니다. 배전공이 한 명 감전돼 숨지면 벌점 50점, 다치면 20점으로 돼 있고 다 합쳐 100점이 되면 계약을 즉시 중단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벌점제 아래서 하청업체들은 감전사고를 한전에 제대로 보고할까요? 한전은 제대로 된 감전사고 현황을 갖고 있기는 한 걸까요? 혹시 이것이 배전공들의 떼죽음이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핵심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두 팔을 잃은 한 배전공이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이번 보도로 배전공들이 한전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라는 것만 알려져도 정말 좋겠다"고 말입니다. "한전 직원이 이렇게 죽어봐요. 무정전 작업을 계속 고집하겠어요?" 차분하게 말했지만 저에게는 절규로 들렸습니다.
이번 보도에 네티즌이 달아놓은 가장 많은 댓글은 '한전 임직원들에게 무정전 작업을 시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전엔 '죽비소리'가 됐으면 합니다. 나아가 배전공들의 감전사고 실태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면밀한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은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