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소기업이 있었다. 대차중개시스템(주식 등 증권 보관 기관이 거래결제, 투자목적으로 증권을 다른 기관에게 빌려주는 거래를 중개하는 전산시스템으로 국내에서는 한국증권금융과 예탁결제원이 사용)을 구축하는 독자 기술을 무기로 지난 2001년부터 기관에서 발주하는 관련 사업을 맡아오던 기업이었다.
지난해 2월 한국증권금융은 기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사업을 발주했다. 사업 규모는 50억 원대. 핵심 기술을 가진 그 중소기업에게 한 대기업이 같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입찰을 하자며 접근해 왔다. 입찰 자격을 위해서도 대기업 한 곳과는 손을 잡아야 했던 중소기업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차례가량 미팅을 갖고 견적 등 자료도 건너갔지만 그 이후 대기업은 연락을 끊었다. 중소기업측은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또 다른 기업과 손을 잡았다. 그 사이 중소기업 대표는 직원들을 통해 몇몇 연구원들이 낌새가 이상하다는 내용을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업 입찰사 제안설명회 당일 중소기업의 직원 정 모 씨는 무단결근을 했고 다른 한 계약 직원인 이 모 씨는 오후에 있던 대기업의 설명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모두들 중소기업에 사표를 낸 상태도 아니었다. 결국 해당 사업은 44억 원에 그 대기업이 수주했다. 억울하다고 느낀 중소기업은 해당 직원들을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는데 1년여 간 수사한 경찰은 일련의 사건이 이들 연구원들의 독자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업 수주를 위해 대기업 간부 등이 개입해 중소기업의 인력과 기술을 빼낸 것으로 본 것이다.

경찰은 사업 발주 직전인 지난 2010년 말 대기업의 한모 팀장이 중소기업 전 간부인 박 모 씨를 접촉해 중소기업의 개발인력을 빼내기로 공모했다고 밝혔다. 박 씨가 정 씨 등 연구원들을 모집했고, 대기업측에서는 이들에게 업계 최고 대우(현 중소기업의 급여는 월 450만 원이었지만 월 1000만 원 지급을 약속)를 제시하고 포섭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 씨는 대기업측이 만드는 제안설명서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프로그램 메뉴구성도 등 핵심 자료까지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해당 대기업은 해당 사업의 경우 입찰 당시부터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끼고 응찰하는 방식이었고 인력 유출 등은 하청업체가 한 사안이라 자신들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은 대기업이 우선 정 씨 등 연구원을 협력업체에 형식적으로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다면서 통상적이지 않게 협력사가 중간 수수료를 떼지 않고 급여를 곧바로 이들에게 입금한 점 등은 석연치 않은 면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대기업 법인과 간부, 중소기업 연구원 등 10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대기업의 윗선 개입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상생 위주의 사회로 전환하자는 것이 하루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요즘 들어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더욱 이슈화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동반성장이니, 중소기업과의 상생이니 주장하면서 뒤로는 사업 수주를 위해 중소기업의 직원을 빼돌려 영업비밀까지 빼내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면 이건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이것이 과연 대기업이 외치는 경제민주화인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