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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국악기, 112년만에 고국행

안서현 기자

입력 : 2012.08.03 17:21|수정 : 2012.08.03 17:24

파리에 잠든 '한국의 소리' 되찾다


지난 7월 31일 오후 1시 50분.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인천국제공항에 내립니다. 112년 전, 프랑스에 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악기 11점이 실려 있습니다. 백 년도 더 된 전통 악기들이 어떻게 프랑스까지 가게 됐을까?

지난 1900년, 에펠탑이 위치한 샹드마르스에서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만국박람회는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 산업 박람회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개최됐습니다. 새로운 공산품을 전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국가 간에는 산업화 경쟁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파리 만국박람회에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찬을 대표로 한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사절단은 왕실 생활용구와 도자기, 무기류, 악기 등 수백 점을 박람회회장에 출품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고종은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박람회에 출품할 품목들을 고종이 직접 하나하나 선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증거로 '독립신문'에 낸 광고가 눈에 띱니다. 악기를 포함해 박람회에 출품할 좋은 물건들을 전국적으로 수소문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미지하지만 '돈'이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산 넘고 물 건너 외국 한 번 나가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듭니다. 사절단이 그 많은 물건들을 싣고 파리까지 가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우리 사정을 딱하게 여긴 파리에 있는 후원자들이 돈을 모아 20만 프랑을 마련해줬습니다. 민영찬을 대표로 한 사절단은 무사히 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었고, 출품한 품목들 가운데 우리 국악기가 특히 주목을 받아 '동메달'까지 수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가 문제였습니다. 갈 때는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수송비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돌아올 비용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운송비를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제국의 재정은 열악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절단은 어쩔 수 없이 국악기를 포함한 전시품을 전부 프랑스에 기증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미지이후 이들 악기는 파리의 여러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줄곧 수장고에만 보관된 채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파리 음악박물관에서 '비 유럽권' 악기 전시를 담당하고 있던 학예연구원 필리프 브뤼귀에르 씨의 노력으로 마침내 백여년 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 국악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은 1년 동안 전시관 개편 공사를 마치고 이번에 재개관하면서 프랑스에 있던 국악기 11점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해외 소재 국악 유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특별 기획전을 마련한 겁니다. 

112년만에 고국 땅을 밟은 국악기 11점은 가야금과 해금, 단소, 거문고, 대금, 방울, 북, 세피리, 향피리, 양금, 용고 등 왕실에서 사용됐던 악기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과 선비들이 즐겨 연주했던 악기까지 다양합니다. 당시 국악 연주단의 악기 편성까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우리 악기 11점은 오는 7일부터 두 달 동안 전시됩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