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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에서만 통하는 '세계 3대' ②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입력 : 2012.07.31 09:57

순위 매기기는 예술과 어울리지 않는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사실 이런 말들은 발레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국내에서 세계 5대 뮤지컬로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서는 통하지 않는 홍보용 수사였지요. 유형종 씨는 서양음악의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는 말을 예로 들었는데요, 그저 ‘이름 철자가 B로 시작하는 3명의 작곡가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음악사의 3대 위대한 작곡가’로 인식되면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미적 감각을 제한해 버리는 폐단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전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 차이콥스키, 멘델스존의 작품이라고 들어왔고, 그게 상식인 것처럼 여겼는데, 어느 순간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세 곡 말고도 수많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곡들이 있는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누가 이 세 곡만 추려서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정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세계 3대, 5대, 같은 말들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등수 따지기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가 나오고 경쟁적인 교육 환경 자체가 어려서부터 등수 매기는 걸 좋아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할까요. 꼭 등수 매기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는 첫째는 뭐, 둘째는 뭐, 셋째는 뭐, 이런 식으로 숫자를 매겨 간명하게 ‘정리’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긴 말 필요 없는 ‘세계 3대’ 같은 수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도 그런 점에서는 우리와 비슷하다니, 수많은 ‘세계 3대’가 어쩌면 일본에서 건너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예술에 순위를 매기는 게 예술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 경제와는 다르게 발레는 순위가 나오는 게 아니고, 관객의 마음에 닿는 것입니다. 관객들마다 생각하는 세계 최고 발레단이 다를 거고, 그건 관객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 각 발레단마다 독특한 특징과 성격이 있는데, 여기에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예술의 본질하고는 어긋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

- 예술의 본질은 비교하는 데 있지 않아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고 경쟁을 하기는 하지만 등수를 매길 수는 없죠. 현실적으로 콩쿠르에서 등수를 매기긴 하지만, 그건 젊은 무용수들을 위한 등용문으로서 의미가 있는 거죠. 콩쿠르에서 1등 했다고 예술가로서 1등이다? 그건 아니죠.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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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사를 통해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가 ‘세계 3대 발레단’에 포함되지 않는 별볼일 없는 단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 5대 발레단이 아니라서 감동이 없던가요? 뮤지컬 ‘미녀와 야수’가 세계 5대 뮤지컬이 아니라서 재미가 없던가요? 세계 3대, 5대, 이런 식으로 순위를 따지는 게 예술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는데다, 출처도 없이 마케팅을 위한 홍보용 수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사가 나가고 나니 제 의도와는 달리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가 세계 3대 발레단이 아니다 ⇒ 즉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는 후진 단체다’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세계 3대’라는 레토릭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거꾸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론도 이렇게 등수 매기기 좋아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계 몇 대’ 같은 수사는 시청자나 독자의 관심을 확 끌기 위한 문구로 언론에서 선호하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이런 수사의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취재 경험이 쌓일수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공연 분야에서도 기자 한 사람이 모든 공연에 대해 다 잘 알 수는 없으니 기사를 쓸 때 공연 보도자료에 어쩔 수 없이 의지하게 되는 게 현실이지요. 그런데 이 보도자료가 부실하고 과장된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매체는 또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져서 잘못된 정보가 계속 확대 재생산됩니다.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간단해 보이는 기사지만 이 기사 쓰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ABT 수석 무용수로 승급한 서희 씨의 의미 있는 고국 공연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서희 씨가 우연히 공연 기간 중에 TV로 제 기사를 봤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세계 몇 대’ 수사가 범람하고 마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풍토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는 공연 자체의 수준이나 의미와는 별개의 문제로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방송 기사에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건 참 쉽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방송 전파를 타는 것은 예전에 여러 번 비슷한 취지로 글을 썼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 몇 대’가 난무하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건 짧은 방송 기사로는 다 못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제 기사에 제가 얼굴 내밀고 했던 클로징 멘트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뛰어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모두 다른 빛깔과 향기를 갖고 있고, 관객의 취향도 각각 다르니, ‘세계 몇 대’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더구나 이것이 별 근거 없는 홍보용 수사에 불과하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