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이다. 이맘 때면 바빠지는 조직이 있다. 검찰이다. 검사들이 제일 하고 싶어한다는 속칭 '거물 수사'의 계절이 시작됐다. 이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해 왕 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국무차장,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이 줄줄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검찰이 다시 칼을 빼들었다. 이번엔 저축은행 비리 의혹 사건이 발단이 됐다. 대상은 이명박 정권의 정점에 서 있었던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17대 대선 직전인 지난 2007년부터 이미 구속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6억 원 안팎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대통령의 친형... '침묵'

검찰은 이 돈이 해당 저축은행에 대해 각종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의 '보험금'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검사 무마나 은행 퇴출 저지를 위한 구체적인 청탁 명목도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돈 가운데는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임 회장에게 건넨 현금 14억 원 중 일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검찰은 또 이 전 의원이 과거 사장으로 재직했던 코오롱그룹으로부터 자문료 형식으로 받은 1억5천만 원이 불법 정치자금에 해당하는지 돈의 성격도 규명할 방침이다. 이밖에 이 전 의원실 직원 계좌에서 발견된 이른바 '장롱 속 7억 원'의 출처 역시 조사 대상이다.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벌어지는 상황만 놓고 보자면 사면초가인 셈이다. 뭔가 해명을 할 법도 한데 이상득 전 부의장 측의 반응은 '침묵'이다. 이 전 의원측 관계자는 "검찰에 출두할 때까지는 일체 언론 접촉 안 하시겠다고 한다. 검찰에서 다 충분히 소명하시겠다고 한다"라고만 밝혔다. 언론에 해명을 해도 결국 계속 부풀려지기만 하니 그냥 검찰에서 다 밝히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확인차 던진 질문에서 묘한 답변이 돌아왔다. "검찰 수사건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신 거죠?"라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일일이 해명하지 않고 검찰에 나가 충분히 소명하겠다"였다. "문제 없죠?"라는 질문에 "문제 없다"가 아니라 "일일이 해명하지 않겠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평소 의혹이 불거질 때면 강하게 부인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 제1야당 원내대표... '반발'

검찰이 이상득 전 의원과 함께 수사선상에 올린 인물은 제1야당의 원내대표인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과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다. 검찰은 이들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최소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진술과 첩보를 입수해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검찰 안팎에서 흘러 나온 수사 소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일 아침 지도부 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잇따라 검찰을 정면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지난해에는 C&그룹, 부산저축은행, 태광그룹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을 중심에 띄우더니 올해는 솔로몬, 보해, 미래 저축은행에 자신을 띄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이상득 전 의원은 간 곳 없고 박지원과 정두언 의원만 보인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그의 하수인 검찰들은 성공한 물타기 작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박지원의 입'이 무서우면 정면으로 증거를 대고 수사하기 바란다면서 자신도 잘못이 있으면 책임져야 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저축은행 비리에 관계가 없다며 결백을 역설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반응은 이렇듯 '반발'이었다. 검찰이 구체적 증거도 없이 말을 흘려 의혹만 부풀리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저축은행 비리와) 절대 관계가 없기 때문이라며 같은 당 의원들이 적극 활동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강조했다. 결백에 대한 자신감인 셈이다.
◈ 과거 실세... '억울'
정권 초기 실세로 꼽혔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반응은 또 달랐다. 이상득 전 의원처럼 '침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박지원 원내대표처럼 강하게 '반발'하지도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해명해나갔다.
정 의원은 지난 2일 의원총회에서 자신이 이런 문제로 신상 발언을 하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동료 의원들에게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억울함을 숨기지 않았다. 억울하고 답답한 부분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고도 했다.
정 의원은 의혹이 불거진 2007년 당시 자신이 대선 한가운데 있어 여러 가지 오해 살 부분이 있을 수 있었다면서 검찰도 오해가 있는 거라고 했다. 정 의원은 자신의 금품수수 의혹은 일종의 배달사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과 자신을 연결해줬던) 당사자를 찾았고 확인 절차까지 마쳤다며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명 준비도 다 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 측은 지난 2008년 1월 총리실에 있는 후배인 이모 실장의 소개로 임석 회장을 만났다고 했다. 자리를 마치고 일어날 때 임 회장이 수천만 원을 차에 실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소개자인 이 실장을 통해 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문제가 불거진 뒤 이런 사실을 이 실장에 거듭 확인했다고 말했다.
◈ 침묵..반발..억울 3명의 운명은?
정권말, 여야 거물 정치인들이 또 한 번 검찰수사 선상에 올랐다. 반응도 3인 3색이다.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대규모 비리 사건이 될 수도 있고 검찰의 헛발길질이 될 수도 있다. 첫 결과는 오늘(3일)중에 윤곽이 드러날 걸로 보인다.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에 출석한다. 노무현 정권 때와 똑같은 양상이다. 대가성있는 금품 수수 사실이 드러난다면 알선수재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전망이다.
3인 3색의 진실게임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