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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 끄는 교회 십자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범주 기자

입력 : 2012.06.15 18:56|수정 : 2012.06.15 18:56


우리나라에 교회가 몇 개나 있을까요? 대충 인구 천 명당 교회 1개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2000년만 해도 4만 개 정도였는데, 2007년에 5만 2천 곳까지 늘어났습니다. 이 추세라면 지금은 아마 더 늘어났을 겁니다.

기독교를 믿으시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좋은 소식이겠지만, 반대로 믿지 않는 분들은 불편한 점도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교회 첨탑에서 반짝이는 십자가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는데, 밤에 십자가 불 때문에 너무 밝기도 하고 불편하다는 겁니다. 또 미관상 그렇게 좋지도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사실 외국 교회들의 경우 밤에 십자가에 조명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왜 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요. 취재를 하면서 만난 교계 분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교회가 여기 있으니 힘든 사람은 오라는 의미에서 올리기 시작한 건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 간에도 경쟁이 붙고 하다 보니 상품광고, 혹은 간판처럼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더 높게, 더 밝게 비춰서 좀 강한 인상을 심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계의 원로인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님을 그래서 만나봤습니다. 원래 방송 인터뷰를 즐기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취지를 설명드리자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이 분 말씀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본래 십자가라는건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서 희생당한 곳이니까, 결국 겸손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과시의 상징처럼 되어버려서 일종의 신성모독 비슷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처럼 기독교가 사회에서 아주 핍박받는 소수였다면은 다른 사람 눈에 거슬리지 않겠지만, 지금은 기독교가 너무 숫자도 많아져버리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커져버리니까 다른 사람 눈에는 세력 과시하는거냐,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겁니다.

일반 사회가 그것에 대해서 역겨움이 있다면은 그런 역겨움의 대상을 갖다가 그대로 둘 이유가 전혀 없죠. 그건 기독교 자체를 위해서도 별로 도움이 안되고 또 도시 미관에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면 철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실제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양시의 교회 목사 백 분 정도가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십자가 불을 끄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20미터 가까이 올라갔던 첨탑도 과하다고 인정하고 3미터 정도 낮은 첨탑으로 바꾸기로 한 겁니다. 이 운동을 주도한 한관희 안양시 기독교 연합회장은 “십자가를 높이 올리고 밝게 비추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몸을 낮추는 기독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 운동을 추진하게 됐습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과연 목사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동의를 한 걸까, 저는 사실 좀 반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른 분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요, 취재를 한 결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이제는 좀 분위기가 바뀌어야죠”라고 말씀들 하시는 겁니다. 빨간 십자가로 대변되는 일반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야 한다는 데 공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이미지

그 결과가 바로 옆 사진입니다. 원래는 성결대학교 앞에 교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십자가 야경을 찍으러 밤 12시에 올라갔던 건데요. 20곳 가까이 된다던 교회 불빛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불들을 다 껐더군요. 덕분에 가로등 불빛 외에는 거의 동네에 불빛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생경한 장면이더군요.

다시 손봉호 교수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손 교수님은 이런 움직임이 아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시면서,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이 일을 계기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요.

"이걸 시작으로 한국교회에서 2가지를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돈에 관심이 너무 많다, 우리 종교가 돈에 관심을 갖게 되면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한국 교회가 첫째 돈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둘째 세속적인 명예와 권력, 이런 것은 종교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더 겸손해지고 희생할 각오를 해야 그게 종교가 본연의 임무를 다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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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이 십자가 뉴스를 전한 의도는 이렇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취재를 하다보면 기독교계가 우리 사회에 아주 큰 일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깨닫게 됩니다. 정부나 일반 사회가 사회 어두운 부분,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다 못해주는 부분을 종교단체들이 많이 메꿔 주고 있거든요. 아이들을 유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차라리 버릴 거면 자신에게 맡기라며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던 이종락 목사를 취재할 때가 대표적인데요, '나는 저렇게 살 자신이 있나'라는 생각을 쉴 새 없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 적잖은 비난이 기독교에 쏟아지면서 이런 봉사가 빛바래는 것도 현실입니다. 교회가 급속히 커지다 보니, ‘일부’라고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일반 사회의 간극을 좁히려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겠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또 뉴스가 안 좋은 부분, 잘못된 부분만 콕콕 짚어 보도하는 것보다, 좋은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글쎄, 제 생각이 짧은 리포트에서 얼마나 표현됐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취재파일도 길게 쓰게 됐는데요, 제 기사가 힘들여 변화를 만들어 가려는 분들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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