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연예술협회(ISPA) 서울총회가 문화변동, Cultural Shift를 테마로 이번 주 개막합니다. 국내외 공연계 비중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형 컨퍼런스죠. 이번 총회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인데요, 이 글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을 전세계 영화관에서 중계하는 '메트: 라이브 인 HD' 프로젝트를 비롯해 기술을 공연예술 향유와 전파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다뤘습니다.
지난달 '문화 서울'에 실었던 글인데, 이 글이 '빌미가 되어' 혹은 '덕분에' ISPA 총회 중 한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공연예술 향유 방식의 변화'를 다루는 세션으로 바로 이 글에서 다룬 주제를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메트: 라이브 인 HD' 프로젝트 실무를 총괄하는 엘레나 박 부감독 등이 참여합니다. 15일 오후 4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열려요. 미래부에서 컨퍼런스 기획만 해봤는데 처음으로 진행을 맡게 되어 걱정도 많이 됩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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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화관에서도 팝콘을 먹으며 오페라를 즐길 수 있다. 그것도 오페라 가수와 팬들에게 ‘꿈의 무대’로 손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로 표기)의 공연을 말이다. 바로 ‘메트: 라이브 인 HD’ 시리즈 얘기다.
‘메트: 라이브 인 HD’는 2006년 소니 클래시컬 레코드 대표였던 피터 겔브가 메트 오페라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메트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를 전세계 영화관을 통해 실시간으로 HD 위성 중계하는 것이다. 디지털 영상기술을 활용해 오페라를 대중에게 친근한 장르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오페라 관객을 늘리려는 시도다.
메트 HD 시리즈는 초창기엔 6개국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여섯 번째 시즌을 진행 중인 현재, 54개 국 1,700여 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메가박스, 베어홀 등에서 상영한다. 메트에 직접 가서 볼 경우 최고가 400달러 이상인 공연을 3만원에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실시간 중계가 아니라 녹화영상을 상영한다.)
HD 시리즈는 출범 이후 96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하며 메트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었다. 메트는 보통 영화관 티켓 판매액의 절반을 갖고, DVD도 제작 판매한다. 오페라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높여 오페라 하우스 입장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까지 거뒀다.
메트 HD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 시어터와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이 메트의 선례를 따랐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한발 더 나아갔다. 영화 ‘아바타’의 제작에 참여한 3D 기술 보유업체 ‘리얼디(RealD)’와 제휴해, ‘카르멘’과 ‘나비부인’을 3D 영화로 공동 제작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3D 화면과 서라운드 입체 음향이 뛰어난 현장감을 제공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8년 ‘디지털 콘서트홀’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 중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접속해 150유로의 연간 회비를 내면 HD 화면으로 베를린 필의 공연들을 즐길 수 있다.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클래식 음악과 IT의 만남으로 주목 받았다.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려 온라인 오디션에 응시한 사람들 중에서 선발한다. 지난해 3월, 이 오케스트라는 시드니에서 1주일간 오프라인 리허설을 거쳐 공연을 열었고, 유튜브의 공연 중계는 3천 3백여만 명이 지켜봤다.
미국의 작곡가 에릭 휘태커의 ‘가상 합창단(Virtual Choir)’ 역시 온라인으로 단원을 모집하지만, 오프라인 공연 없이 순수하게 온라인 상에만 존재한다. 에릭 휘태커가 자신의 곡을 지휘하는 영상과 파트별 악보를 웹에 올리면, 네티즌들은 이에 맞춰 직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한다. 이 영상들을 모아 편집하면 가상 합창단이 만들어진다.
최근 발표된 가상 합창단 3.0 ‘워터 나이트(Water Night)’에는 무려 73개국에서 3,746명이 참여했다. 기술을 이용해 예술 작품을 폭넓게 전파할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프로젝트다.
이렇게 예술과 기술의 협업이 활발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견해도 있다. 본 조비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음반산업을 죽이는 주범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음악산업은 인터넷 공유 기술이 발달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CD 판매량은 급격히 줄었고, CD 판매가 주 수입원이었던 음악가들은 다른 수입원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미국음반산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음반 출하량은 총 18억 개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고, 매출액도 70억 달러로 0.2% 성장했다. CD 매출액은 8.5% 줄어들어 쇠퇴 추세가 여전했지만, 디지털 음원시장의 성장이 이를 상쇄했다. 디지털 때문에 죽어가던 음악 시장이 디지털의 힘으로 되살아났으니, 기술의 발전은 음악 산업에 위기뿐 아니라 기회도 제공한 셈이다.
일상 생활까지도 크게 바꿔놓은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떤 분야든 성장이나 존립 자체도 어려운 시대다. 과거 공공 지원이나 후원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공연 예술계는 재정 위기 속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의 관객층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메트 HD 시리즈를 비롯해 앞서 소개한 많은 사례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욱 빨라지는 기술 발전과 함께 지금까지의 예술 창작과 공유 방식을 뒤흔드는 새로운 실험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 이는 ISPA(국제공연예술협회)가 Cultural Shift, 문화변동이란 타이틀 아래 서울에서 여는 제 26회 총회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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