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부 민병대의 무자비한 발포로 어린이 32명을 포함해 적어도 116명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 '훌라 대학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센 가운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소년의 증언이 당시의 참혹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 인터넷판이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11살 된 소년의 말을 빌려 학살이 시작됐을 당시 집에 들이닥친 민병대의 무차별 발포로 가족 6명이 살해됐으며, 이 소년은 피살된 형으로부터 흘러나온 피바다(血海)속에서 죽은 것처럼 가장해 살아났다고 전했다.
소년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지난 26일 새벽 3시께(현지시각)였다.
정부군이 발사한 포탄이 훌라 시에 쏟아지기 시작한 지 몇 시간 뒤였다.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운 민병대는 소년의 집 문을 통해 다섯 발을 발사하고 나서 진입했다.
처음에는 소년의 아버지와 형을, 이어서 삼촌의 신원을 파악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아서는 가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진 것 같았다.
문에 기댄 채 두려움에 떠는 순간 민병대는 눈앞에서 총을 발사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도대체 우리 남편과 아들에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기관단총을 가진 대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발포했다.
어머니가 쓰러지자 잇따라 다섯 살 난 여동생을 향해 발포했다.
다음에는 형이 머리와 등에 총을 맞아 쓰러졌다.
소년은 "민병대원은 나에게도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비켜나가는 바람에 맞지 않았다"면서 "그들이 눈치 챌지 몰라 겁이 났지만, 죽은 것처럼 하려고 얼굴에 피를 잔뜩 묻혔다"고 악몽을 되살렸다.
그러자 민병대가 사살 작업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집에 있던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 가재도구를 약탈하고서, 다른 집으로 옮겼다.
집 밖에서 민병대는 그들이 찾던 아버지, 형, 그리고 삼촌 등 세 사람을 발견해 현장에서 총살했다.
민병대를 태운 장갑차와 탱크가 사라지자 소년은 부근 삼촌 집에 달려가 피신했다.
가디언과 15분간의 회견에서 소년은 침착하게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민병대가 친정부라는 사실과 함께 자신의 증언에 거짓이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