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정준형 기자입니다.
취재파일에서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해엔 국제부에서 일하면서 흥미있는 외신관련 소식들을 취재파일에 올리곤 했는데, 올해는 정치부에서 새누리당을 맡아 취재하게 됐습니다. 흔히 올해가 20년만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해라고 합니다. 그만큼 정치권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노동 강도가 세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비록 몸은 힘들어도 정치부 기자로서는 큰 선거를 두 번씩이나 취재해본다는 게 큰 행운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인사드리고,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래 1, 2, 3, 4번을 봐주시죠. 어떤 정치인들의 말들을 뽑아놓은 것입니다. 먼저 한 번 쭉 봐주시죠!
1. "낡은 정치 반드시 청산하고, 원칙과 신뢰의 새로운 정치 만들겠다."
2.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유지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신뢰를 깨뜨리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4.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원칙과 신뢰로 섬기는 정치를 하고, 국민이 감동할 때까지 무한 책임을 지는 헌신과 봉사의 정신으로 정치를 시작하자."
어떤까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읽어본 듯한 말들이 아닌가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위의 말들은 어느 정치인이 한 말들 일까요? 읽는 분마다 여러 사람이 떠오르실텐데, 힌트는 정치인 2명의 입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이 2명의 정치인은 누구와 누구일까요?
답이 떠오르셨나요? 답을 말씀드리기 전에,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위 네 가지 말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만 찾아보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위의 네가지 말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말은 바로 '
원칙'과
'신뢰'입니다. 위의 말들을 한 두 분의 정치인 모두 '원칙'과 '신뢰'를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 여쭙습니다. 위의 말들을 한 정치인 2명은 누구일까요? 바로 고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어떠신가요? 각자 떠올렸던 정치인들과 일치하셨습니까? 노무현과 박근혜, 전혀 상반된 이미지의 정치인들입니다만, 두 사람 모두 무엇보다 '원칙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4개 말들 가운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과 박근혜 전 위원장이 한 말은 각각 몇번 몇번일까요? 언뜻 보면 비슷비슷해보이지 않나요? 답을 말씀드리자면 1번과 2번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 3번과 4번 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말입니다.
1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1월 당시 부산 유세 때 말한 내용이고, 2번은 역시 같은해 11월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와 후보단일화 방식에 합의한 뒤 불리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인 이유를 묻자 '원칙과 신뢰'가 중요하다며 한 말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말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7일 관훈토론회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한 말이고, 네번째는 지난 1월 13일 박 전 위원장이 충남도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서 한 말입니다.
아무튼 위의 말들을 다시한번 봐주시죠.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어떻게 전혀 상반된 정치 행로를 걸어온 두 정치인의 말이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요? 아마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칙과 신뢰'라는 것은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걸까하고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를 얼마나 강조했냐하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당시부터
줄기차게 '원칙과 신뢰'를 외쳐댔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된 뒤에도 '원칙과 신뢰'를 4대 국정원리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켰을 정돕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 역시 지난해 연말 당의 위기상황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해 4월 총선을 이끌면서 무엇보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왔습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이런 사실, 그러니까 자신이 강조한 '원칙과 신뢰'라는 말을 노 전 대통령이 10년 전에 똑같이 강조했던 말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몰랐다면, 박 전 위원장도 이런 사실을 알고나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만약에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박 전 위원장이 '원칙과 신뢰'라는 말을 강조했다면,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정치 지도자들로 하여금 '원칙과 신뢰'라는 말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원칙과 신뢰'만 고집하다가는 자칫 '아집과 편협함', '오만과 독선'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숱한 논란들을 떠올려보시면 짐작이 가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선을 앞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원칙과 신뢰'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 또는 가치들에 대한 '유연함과 포용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