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뢰르 펠르랭. 새로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첫 내각 명단에 올라 있는 이 이름은 이제 한국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입양인 출신이라고 해서 그 동안 한국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기 때문이죠. 우리로 치면 중소기업청장과 예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합친 중소기업·디지털 경제 장관으로 당당히 입각한 것입니다.
펠르랭은 1973년 출생 직후의 상태로 거리에서 발견된 뒤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된, 말 그대로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원자 물리학 박사인 양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양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 덕분에 천재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굳이 입양인이라는 타이틀이 아니어도, 보기 드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남들보다 2년 앞서 대학입학 자격을 획득했고, 최상위권 학생들만 가능한 명문 상경계 그랑 제콜 에섹(ESSEC)에서 경제학을, 파리 정치대학(씨앙스 포)에서는 공공행정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습니다. 우리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립행정학교 졸업은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외무고시를 동시에 합격한 뒤 10년 정도의 경력을 더해주는 위상을 갖습니다. 그런데 펠르랭이 이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을 때가 26세였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화제가 되자, 특파원인 저도 급하게 섭외를 해서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대선 승리 직후, 정권인수위원회로 바뀐 선거대책본부에서 마주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죠. 그런데 펠르랭을 인터뷰하면서도 마음속 한 자락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오래 전에 만났던 또 다른 입양인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2003년 1년 동안 파리에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프랑스 연수 중이었기 때문에 이것 저것 관심 사항들을 챙겨볼 수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입양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프랑스에는 Racines Coreennes(한국인의 뿌리)라는 입양인 단체가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구성원도 많지 않았는데, 대부분 힘겹게 일상을 이어가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7살 때 입양돼온 한 친구와 친해지게 됐습니다.
양부모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고, 학교 생활에서의 적응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찍 독립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군대였고, 직업군인을 하려다 포기한 뒤 이곳 저곳 직장을 옮겨 다녔습니다. 그 사이 한국의 친부모를 찾기는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자주 연락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저를 만난 것인데, 한국으로 가서 일을 하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영어를 곧잘 하는데다 군대에서 주로 컴퓨터를 다뤘고, 제대 후에도 파리 부근의 IT기업들에서 일을 했다고 하길래 평소 알고 있던 한 IT 기업에 소개를 해줬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수를 끝낼 무렵 그 친구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보니 적응이 쉽지 않아 보이더군요. 일단은 회사 내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언어장벽이 너무 컸던 것 같고, 한국 사회가 ‘성공하지 않은 채 돌아온’ 입양인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느낀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6개월을 못 버티고 프랑스로 되돌아갔죠. 2010년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봤지만 연락이 되질 않더군요.
펠르랭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 생각이 다시 간절해진 것은, 성공한 입양인과 성공하지 못한 입양인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였을 것입니다. 해외입양은 우리 사회가 나서서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어렵던 시절 국내 입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해마다 수천 명씩, 그리고 지금도 천 명 이상씩 해외로 내보내지는 아이들 가운데 펠르랭 같은 입양인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 문제 때문에 고통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펠르랭에 관심을 갖고 환호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이야 한국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갖고 있지 않겠지만, 저렇게 성장해준 것 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감사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버렸던 수많은 입양인들입니다. 한 번 버렸지 두 번 버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