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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터넷 대출 중단까지 부른 피싱

박민하 기자

입력 : 2012.05.02 10:42


30대 여성 정 모 씨는 3월8일 문자를 받았다.
"KB국민은행입니다. 포털사이트 정보유출로 보안승급 후 이용해 주세요. www.card-kr.com"

정 씨는 이 사이트에 접속해 계좌번호, 비밀번호, 보안카드 번호 등을 입력했다. 사기범은 이 정보로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았고, 예금과 적금담보대출 등 4,700만원을 빼갔다. 정 씨는 “사기범에 속은 것은 내 잘못이지만, 어떻게 은행에서 본인 확인도 안 하고 인터넷으로 대출을 해 줄 수 있냐?”고 했다.

이런 피해는 제2의 카드론 사태로 번질 소지가 충분했다. 이런 종류의 사기는 있는 돈만 빼가는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대출을 일으켜 피해를 키운다. 그래서 더 악질적이다.

초기 피해자들은 대부분 국민은행에 계좌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문자메시지의 특성상 개인 고객이 가장 많은 은행이 사기범의 1차 타깃이 된 것이다. 국민은행이 자체적으로 적발하는 가짜 국민은행 사이트는 한 달에 300건에 이를 정도. 그리고 다른 은행으로 사기범의 타깃이 확대되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1월18일부터 인터넷으로 모든 절차가 진행되는‘우리U신용대출’을 중단했다. 국민은행은 4월13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신용대출을 중단한데 이어 4월16일부터는 인터넷 등을 통한 예적금 담보대출을 막았다.

우리은행은 5월2일부터 인터넷 예금담보대출을 중단했다. 고객이 인터넷으로 대출을 신청해도 은행 직원이 직접 방문해서 확인하거나(아이터치 전세론), 전화로 본인 확인을 하는(프라임파워론) 다른 대출상품과 달리 인터넷 예금담보대출은 본인 확인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신한은행도 2일부터 인터넷을 통한 ‘탑스클럽신용대출’을 잠정 중단했다. 다른 신용대출은 유선 확인절차가 있지만 이 대출 상품은 주거래 고객에게 간편하게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대면이나 유선 확인 과정이 없는 상태다. 신한은행은 인터넷 예금담보대출의 경우 5월4일부터 본인 명의 휴대전화로 SMS 본인인증을 해야만 대출을 실행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담당자들을 불러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했다. 한 쪽을 막으면 다른 쪽을 뚫으려할 게 뻔하므로. 하나은행과 농협 등도 조만간 비슷한 인터넷 대출 제한 조치를 준비 중이다.

“보이스피싱이나 피싱사이트는 시스템에 대한 취약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공격하는 사기다.” 송찬희 국민은행 IT기획부장의 말이다. 사실 이런 가짜 은행 사이트는 과거에 빈발했던 가짜 검찰 사이트, 가짜 금융감독원 사이트를 통해 개인의 금융정보를 빼냈던 수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달라진 건 최근 잇따라 발생했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그 영향으로 ‘내 정보가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범죄에 이용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해진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이렇게 인터넷 대출을 막아 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질까 궁금해졌다. 올들어 국민은행의 인터넷 신용대출은 월평균 21억원. 전체 신용대출의 0.67%에 불과하다. 국민은행의 인터넷 예적금 담보대출도 월평균 80억원. 전체에서 3.6%의 비중밖에 안 된다. 신한은행이 막은 인터넷을 통한 ‘탑스클럽신용대출’도 3월 실적은 22건에 2억 3,600만원.

인터넷 은행대출을 막으면 분명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은행 실적에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거액을 피해보는 사람들의 고통이 존재한다면 그런 불편과 실적 감소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금융회사라는 게, 정부라는 게 고객의,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더 편리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더 안전해진 세상에 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편리와 안전이 양립되지 않는다면 그 기간에는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