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53)는 지적이면서도 자기 과시욕이 강했던 인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 덴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에드워드 바이린은 구카이라이가 지난 1997년 미 앨라배마주 모빌에 아들과 함께 나타났을 때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구카이라이와 함께 미국 기업과의 송사에 휘말린 중국 업체들의 변론을 맡았던 바이린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JS)과의 인터뷰에서 쿠가이라이의 명석한 두뇌와 매력, 미모에 깜짝 놀랐다면서 "그녀는 중국의 재키 케네디(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같았다"고 회고했다.
미국 업체가 영업기밀 도용과 사기 등 혐의로 중국 기업들을 고소했던 이 사건에서 미 연방법원 1심 재판부는 중국 기업에 1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에 중국 기업들의 변호인단을 이끌던 구카이라이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와 소송을 진두지휘했고, 결국 상급심에서 판결을 뒤집었다.
이때의 승리는 지금도 중국에서 '전설'로 회자된다.
당시 구카이라이의 명함에는 이름이 '호루스 L.카이'로 돼 있었다.
호루스(Horus)는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의미한다.
구카이라이는 소송이 종결되자 함께 일했던 미국 변호사들을 다롄(大連)으로 초대해 성대하게 접대했다.
파티에는 당시 다롄(大連) 시장이었던 남편 보시라이도 참석했다.
충칭시의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王立軍)이 지난 2월 미국 영사관에서 망명을 시도하면서 촉발된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정치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왕리쥔은 지난해 11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영국인 사업가 네일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후 독살된 정황이 있다는 사실을 보시라이에게 보고한 이후 좌천됐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권에서 선두를 달리던 보시라이도 끝내 실각했다.
보시라이는 지난달 해임 직전 인민대회장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구카이라이가 20년 전에 변호사 생활을 그만뒀으며 이후에는 가정주부로서 내조에 전념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WSJ는 구카이라이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와 사업가들을 두루 인터뷰한 결과 그녀가 최근 20년간 중국과 미국, 영국 등에서 변호사로서 왕성하게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호루스 투자자문'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중국에서 사업하려는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구카이라이 본인은 이 회사를 중국어로 '카이라이', 영어로는 '호루스 L.법률사무소'라 불렀다.
운영 과정에서는 헤이우드를 비롯한 소수의 친구에게 많이 의존했다.
그녀와 사업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구카이라이가 지식이 풍부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며 자기과시욕이 강하다는 점에서 남편 보시라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구카이라이는 미국 법원에서 승소한 이듬해인 1998년 펴낸 저서 `미국 소송에서 이기는 법'에서 자신을 중국의 국익 보호에 뛰어든 `도전적이고 두려움 없는' 변호사로 묘사했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 TV에서 드라마로 제작됐고 주인공인 구카이라이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신그룹 실세들에게 배신당했다는 두려움과 남편과의 관계악화 등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헤이우드에게는 중국인 부인과의 이혼을 요구하고 충성 맹세까지 강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린 변호사는 구카이라이와 15년 전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사건에 대해 "내가 참여한 소송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였다.
그녀는 매우 날카로웠고 영어도 능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카이라이를 둘러싸고 최근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심한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WSJ은 7일(현지시간) 구카이라이의 현재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직간접적인 접촉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중국 외교부도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