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재기 2

그러면 대원칙을 결정했으니 속전속결로 사업을 진행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취리히 서부 개발은 무려 40년 계획, 그러니까 앞으로도 20년은 더 진행됩니다. 위에 보시는 것이 취리히 시청 지하에 있는 1000:1 취리히 시 모형입니다. 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 건물 모형을 만들어 와서 이 축소 지도에 그 모형을 맞춰보고 전문가, 주민 등과 함께 대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주변과 조화가 맞는지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합니다. '인포센터'라는 사무실을 이 지역에 4년간 열어놓고 수시로 원탁테이블 회의를 갖기도 하고, 개발 내용을 주민들에게 계속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큰 사안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도 합니다. 3킬로미터짜리 전차를 까는데만 시와 주, 2번에 걸쳐서 주민투표를 거쳤습니다. 이렇다 보니 사실 40년도 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취리히 시청을 찾았을 때, 개발 담당 공무원인 다니엘라에게 물었습니다. 40년, 너무 긴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런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합의를 하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물론 빨리 일을 진행하면 좋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많은 의견을 가지고 논의에 참여합니다. 15년, 20년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우리가 하는 일은 또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아마 우리의 개발계획을 연구하게 된다면 한 가지 단어, '인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될 겁니다."
그렇게 모두의 합의로 시작된 취리히 서부 개발은 위 사진에 있는 조선소 공장을 고쳐 만든 첨단 공연장 '쉬프바우', 철강공장을 고쳐 만든 주상복합 '풀스5', 양조장과 첨단 주상복합 건물이 결합된 '미그로스'등으로 거듭났고,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2위를 다투는 취리히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면, 시장의 비전이나 시의 방침이 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주민들이 주장하는 바가 맞는 부분도 역시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팔씨름 하듯, 혹은 전투를 하듯, '너를 눌러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것은 보기에도 아슬아슬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자리까지 올라서는데 '빨리빨리' 정신이 큰 힘이 됐지만, 반대로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적지 않다는 것, 모두들 동의하실 겁니다.
당장은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소리도 좀 올라가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그런 충동을 참고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실생활, '삶의 질'에 대한 문제라면 당장 더디고 답답한 느낌이 들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으며 신뢰를 쌓고 같이 가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입니다. 취리히의 성공 사례를 보고 나니 부럽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로는 호수 위 백조처럼, 우아해 보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스위스 알프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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