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IC칩이 없어요… 불편하면 고객이 알아서…"
IC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카드 교체 발급을 거부당했다는 소비자의 제보를 처음 접한 건 보름 전쯤이었습니다. 당장 3월 2일부터 마그네틱 카드는 은행 영업시간 중에 자동화기기 이용이 제한되는데, "에이, 그래도 IT강국에서 설마 IC칩이 없어 카드를 못 만들겠어?" 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문제의 카드사는 비씨카드였는데, 고객센터에 상담을 요청해도 콜센터 직원은 내용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아직 발급계획이 없다"며 "은행에 연락해라, 비씨카드 말고 해당 은행계 카드사에 연락해봐라" 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문제의 비씨카드를 IC카드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은행 직원은 비씨카드에서 전해온 안내 공문을 보여주며 "비씨카드는 IC카드 발급이 어렵고, 3월 중에 될 거라고는 하는데 언제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며 "정 필요하면 은행계 체크카드를 새로 만들라"고 권유했습니다. 급하면 고객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거죠. 은행에서는 작년부터 준비했는데, 미리미리 준비를 안한 일부 고객들만 불편을 겪는 거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IC칩 물량이 부족한 것 뿐이니, 조금만 기다려라. 보름이면 될 텐데, 별일이 아니다"라는 해명만 늘어놨습니다.
금감원 "2004년부터 추진해왔는데…"
금감원은 2004년부터 꾸준히 IC카드 교체 대책을 추진해왔다고 하니, 처음엔 일부 고객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대체 어떤 대책을 추진해온 걸까' 하는 의문이 더 강해지더군요. 카드사에서는 불과 두세 달 전에도 IC칩이 없는 마그네틱 카드가 발급된 게 다반사였습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금감원과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IC카드 대책이 추진되면서, 수수료 논쟁에 휩싸여 힘겨웠던 카드사들은 사실상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는 말도 들리더군요. 금감원은 "다른 데는 괜찮을 걸요. 비씨카드가 차세대 시스템 구축도 포기하고 계획을 다시 세울 정도로 돈이 없잖아요. 수요 예측을 잘 못한 것도 있구요. 조금 있으면 곧 해준다니까 기다려보죠. 급하면 체크카드 만들고 기다렸다 IC카드 만들면 되니까요." 라는 안이한 답변으로 대응할 뿐 이었습니다.
은행권 준비상황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대부분 은행에서 "'IC카드'에 대한 논의를 하고, 교환작업을 시작한 게 작년 말 정도 부터"라고 답했지만, 은행 영업점 수십곳을 돌아봐도, '내가 못찾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대거 배포됐다던 IC카드 교체 안내 포스터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직원들은 "고객들이 대부분 알고 계셔서, 지금은 거의 붙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체대상 고객이 전체의 17.5%인 9백만명 이라는데, 포스터는 그렇다치고 해당 고객들에게 우편이든 문자메시지든 공지는 잘 됐을까? 은행에선 공지를 했다는데, 받았다는 고객은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금감원도 은행도, 카드사도 "이용제한으로 불편을 겪을 고객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걱정말라, 괜찮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슈가 된 후에 보니, 은행권에서는 지난달에도 구형 마그네틱 현금카드가 버젓이 발급됐더군요.

SBS 보도 이후 금감원 발칵…은행창구 대혼란
3월 1일, SBS 8뉴스에서 "IC카드 교체 불가…혼란" 보도가 나간 뒤 금감원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다음날 아침, 대노한 금감원장은 IT담당 간부들과 실무라인들을 소집해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됐으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고, 시행을 미뤘어야 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마그네틱 이용제한이 시행되기 전날 밤까지도 고객 불편과 관련한 실상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금감원 간부들은 SBS뉴스를 보고 나서야 깜짝 놀랐던 겁니다. "2004년부터 추진해왔고, 교체대상도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고, 준비에도 문제가 없다. IC카드 못 바꿔주는 곳은 비씨카드 한 곳뿐이다. 여기도 기다리면 되니 별 문제없다”던 금감원이었습니다.
3월 2일, 이미 오전 10시부터 마그네틱 카드 이용 제한은 시행에 들어갔는데, 11시 넘어서야 고객들에게 첫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3월 2일부터 마그네틱 카드 이용이 제한됩니다. 서둘러 IC카드로 교체하세요"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은행 영업점마다 교체 안내 포스터도 붙었지만 이미 늦었죠. 사실상 대국민 홍보가 전무했던 만큼, SBS 8시 뉴스 보도가 나간 1일 저녁부터 "IC카드"는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 "대체 IC카드가 뭔데? 당장 내일부터 불편하다는데, 바꿔야하는 건가?" 하는 내용의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2일날 전국 은행 영업점에는 IC카드를 발급 받기 위해 16만 4천여명의 고객이 몰려 대혼잡이 빚어졌습니다. 평소보다 4배 많은 수준이었습니다.
"고객 외면한 탁상행정" 비난…하루 만에 이용제한 철회
금감원 IT담당 라인은 3월 1일 8시뉴스가 보도된 직후부터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2일 아침부터, "고객 불편 최소화를 위한 보완대책"을 내놓은 4일까지 물 한모금 마실 틈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안쓰럽긴 하지만, 미리미리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금감원은 SBS 보도 이후 "고객의 편의를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하루 만에 이용제한 조치를 철회했습니다. 그동안 고객을 무시했으니, 앞으로 석달 동안 TV 광고며 우편이며 문자메시지며 대국민 홍보를 충분히 하고, 고객들 불편하지 않도록 시간을 더 가진 후에 이용제한을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마그네틱 카드 전면제한이 도입되는 건, 예정대로 9월부터지만 은행 영업시간 중에 이용제한이 도입되는 시범 운영은 6월 이후로 석달 미뤄졌습니다.
IT 강국에서 IC칩이 없어 카드를 못 만드는 기이한 상황에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안이한 대처가 한심할 따름이죠. 이용제한 조치에 대해 아무런 사전공지를 받지 못한 힘없는 소비자들, 하루 불편을 겪긴했지만 뒤늦게나마 시름을 더는 선에서 해결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시행 하루 만에 번복된 소비자를 위한 IC카드 교환 대책. 고객을 먼저 생각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오판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