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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철새 쫓는 낚시대회

김형주 기자

입력 : 2012.02.27 16:21|수정 : 2012.02.28 08:23

'사람이 우선이다'?


강원도 철원 민통선 안에는 토교저수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 1976년 제방을 쌓아 만든 저수지로, 안보문제상 민간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언제부터인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곳인데요, 저수지 근처에 가면 송아지도 채 갈 것 같은 위용의 독수리가 공중을 선회하는 장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요, 저수지 한복판에는 아름다운 곡선과 순백의 자태를 뽐내는 고니가 자멱질을 즐기고, 십장생 중 가장 영물로 일컬어지는 학, 즉 두루미가 신선처럼 비행을 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의 백화점, 희귀철새들의 낙원인 곳인데요,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지는 이곳에서 지난 12일 무려 천여 명이 참가하는 얼음낚시 대회가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쇠로 된 끌과 전기 끌로 얼음판에 구멍을 내는 소리가 저수지 내에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마치 시장바닥처럼 되어버린 저수지 위에서 낚시꾼들은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고 즐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요란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두루미와 고니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회가 열린 4시간 동안 천여 명의 낚시꾼들이 잡은 물고기는 베스와 블루길, 누치를 포함해 겨우 20여 마리. 자칭 강태공이라는 사람들이 모여든 걸 감안하면, 희귀철새를 쫓아내고 얻은 성과 치고는 초라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걸까요? 매년 겨울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이 불어닥치는 토교저수지는, 이맘때 쯤이면 얼음이 두깨 1미터 까지 얼어 붙습니다. 얼음 깨는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건데요, 게다가 민통선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대규모 낚시 대회가 열린 적이 없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서울시 낚시 연합회가 당당하게도 낚시꾼 천명이 참가하는 얼음낚시 대회를 토교저수지에서 개최하겠다며 철원군에 신청서를 냈고, 철원군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저수지 출입 허가를 담당하는 근처 육군부대를 설득하면서까지 허가를 내줬습니다. 낚시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년 이런 행사를 개최하다보면, 이웃 화천의 '산천어 축제'처럼 돈벌이가 되는 명물 축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죠.

이런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정작 집주인인 철새들의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철원군청 공무원은 "지역 주민들도 허락을 하시고 환영을 하시기 때문에 철새들한테 약간의 스트레스는 있더라도 유치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나..."라며 철새들이 받을 스트레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시낚시 연합회와 철원군의 말도 안되는 '합작 행사'가 알려지면서, SBS를 비롯한 언론들은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나름대로 경고 기사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시정해 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SBS는 행사 나흘 전에  토교저수지 현장에 서식하는 철새들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뉴스로 방송했고, 천여 명의 낚시꾼들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울 때 철새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직접 실험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숭실대 음파공학과에서 직접 실험을 했는데요, 얼음끌로 50센티미터 두깨의 얼음을 깰 때 발생하는 소음은 76dB, 천여 명의 낚시꾼들이 한꺼번에 얼음을 깰 때는 110dB 정도의 소음이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실제 행사당일인 12일 토교저수지 현지에서 환경단체가 측정한 소음은 105dB. 실험치와 거의 근사한 크기로 지하철이 바로 앞에서 지나가거나, 천둥이 칠 때와 같은 크기의 소음이었습니다. 사람보다 3배 정도 귀가 밝은 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너무나 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지말라고 할 수록 더 기를 쓰고 하고야 마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철원군은 언론들의 비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행사를 강행하고 말았습니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철원군과 얘기하기 보다는 행사 주최측인 서울시낚시연합회와 대화하는 편이 더 현명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잘못된 생각이라는걸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민통선'과 'DMZ'의 차이도 구분 못해 '국내 최초의 DMZ 낚시대회'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참가자를 모으던 서울시낚시연합회의 관계자는 천연덕스럽게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연합회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을 가감없이 전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정말 이건 말이 좀 거꾸로 된 게, 사람이 우선이지 동물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거는... 저희가 그렇게 비상식적으로 행동할 것도 아니고... 뭐 저희가 말 그대로 속된 말로 또라이들도 아니고, 가서 철새들을 건드려서 어떻게 할 것도 아니고..." 너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녹색성장'이니 '친환경'을 외치고 있는 우리의 환경의식 수준을 정확히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년 겨울철 토교저수지에 둥지를 트는 두루미의 개체수는 3백여 마리. 전 세계에 살아남은 개체수의 30%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개체수로만 따지면 60억 인구의 6백만 분의 1에 해당하는 매우 적은 수가 우리 곁에 남은 겁니다. 아무리 사람이 우선이라지만,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도 아닌, 단순히 반나절 정도의 재미를 위해, 언제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를 두루미를 서식지에서 내쫓는 게 과연 정상적인 행동일까요?

언론도 결국 제지하는 데 실패한 강태공들의 못말리는 취미생활과 철원군의 어이없는 지방행정을 보며, 팔도강산의 미래는 더욱 어둡게만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잘못된 환경의식이 활개를 치고 있는 사이, 우리들의 녹색 터전과 귀중한 생명체들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출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