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국회의원, 변호사 겸직 실태 취재
지난 1월, 한 국회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줄 것이 있다, 기사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이메일에는 한 국회의원이 18대 임기 중 자신의 이름으로 받은 판결문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총 114건. '괴력의 OOO 의원'이라는 그럴듯한 제목도 달렸습니다. 국회의원이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 소송 가액이 얼마인지, 심지어 재판 기일과 국회 회의 일정을 칼같이 비교해, 이 의원이 20여 차례에 걸쳐 회의는 빠지고 재판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투자해 만들 수 있는 자료가 아닙니다.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당장 보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9대 총선 공천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특정 의원을 정면 겨냥한 보도는, 아무리 팩트 전달이라고 해도,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8대 의원 가운데 국회의원과 변호사를 겸직한 의원은 52명이나 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악악거리면, 반론이 마땅치 않습니다. 누가 의원님만 그렇다고 알려줘서요,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변호사를 겸직한 게 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료를 일단 노트북에 모셔두고, 취재 인연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인연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최근 박희태 국회의장이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2억 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검찰 조사에서 불쑥 나온 겁니다. 2월 중순, 시경 캡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18대 의원들 변호사 겸직 실태를 좀 알아보란다, 데스크가 기획 총(취재 지시)을 발사했다는 얘기입니다. 누가 죽었는지 알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겸직 실태를 알아보라고 하면, 좀 막막합니다. 취재 루트가 마땅치 않고, 견적이 안 나오니까요. CPU가 달리는 머리를 꾸역꾸역 돌려봅니다.
17대 자료부터 찾아봤습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2006년 국회의원들의 전반적인 겸직 실태를 공개한 적이 있더군요. 변호사 직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당시 의정감시센터 간사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떤 의원이 1,000건 넘는 사건을 수임했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에 물었더니, 18대 의원의 겸직 신고 현황도 국회사무처에서 받아놓았다고 했습니다. 직접 받으려면 며칠 걸렸을 걸, 감사합니다. 다만 국회의원들의 사건 수임 건수를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는, 담당 간사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기본 데이터를 받은 것에 만족.
'괴력의 OOO 의원' 자료를 만든 사람도 접촉합니다. 어떻게 취재하셨느냐고, 노하우 전수를 부탁 드려봅니다. 전화로 전수받은 노하우는, 속어로 '노가다'입니다. 노력 봉사, 품을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상당한 견적이 나옵니다. 특별한 품도 아닙니다. 법조 출입 기자가 아니더라도, 시민이면 누구나 대법원 도서관에서 판결문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홍길동 이름 석 자를 넣으면, 홍길동 판사, 홍길동 검사, 홍길동 변호사, 원고 홍길동, 피고 홍길동이 모두 튀어나옵니다. 이러면 곤란합니다. 흔한 이름은 수백 페이지가 뜹니다. 변호인이 '홍길동'으로 등재된 사건만 검색하는 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국회사무처 겸직 신고 자료에 나온 법무법인 이름을 동시에 키워드로 넣어야 합니다. 로펌에 동명이인이 있지 않은 이상, 빼도 박도 못합니다.
대법원 서버에서, 변호사 겸업을 신고한 국회의원을 찾아 나섭니다.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 의원도 종종 있습니다. 몇 건 나오는데, 의원들끼리 국회 본청에서 격투를 벌이다 기소된 사건이나, 명패를 집어 던져 기소된 사건처럼, 동료를 위해 변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그랬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꼭 이런 것까지 수임해야 하나, 싶은 사건도 있습니다. 성매매 영업을 하다 기소된 30대 남성, 폭력 조직을 구성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한 청년 사건, 일본 성매매를 알선해 기소된 사채업자 사건, 간통 사건까지. 판결문 숫자 세느라, 방송할 내용 있나 확인하느라, 눈이 막 돌아갑니다. 판결문은 전국적으로 달랑 3대의 컴퓨터에서, 하루에 달랑 1시간 반만 검색 가능합니다.
판결문 114건에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은 진정 '괴력'의 호를 받을 만 했습니다. 괴력 OOO 의원. 단연 1등입니다. 2등은 92건을 달성한 지역구 의원입니다. 지역 구민의 부탁을 받으시고, 마사지 방에서 성매매 영업을 한 남자를 변호해줬습니다. 동종 전과가 있었는데,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판결문 수십 건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은 수두룩했습니다. 꼭 100건을 넘지 않아도, 다들 괴력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의정활동 와중에, '금배지의 힘'을 믿고 찾아온 클라이언트를 변호하려고, 지난 4년간 정말 열심히 뛰셨습니다.
변호사 겸직을 신고한 52명을 전수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판결문 114건 괴력을 뛰어넘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릅니다. 국회의원 가운데는 'OOO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의원 자신의 이름을 간판에 내건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검색에 난항을 겪습니다. 로펌 고유 이름을 검색에 넣어야 손쉬운데, 판결문에는 '변호사'라는 단어와 '사무실'이라는 단어가 널렸습니다. '김괴팍' 같은 희한한 이름이 아닌 이상, 개인 변호사 간판을 내건 국회의원은 조사 대상에서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52명 모두 분석하려면, 진짜, 탐사취재팀 구성하고, 사람 불러야 됩니다. 변호인에 직접 이름을 올리면 이렇게 흔적이 남습니다.
국회의원이 변호사 겸직하는 게 뭐 어때서? 불법도 아닌데? 라고 하지만, 부적절한 경우는 늘 있습니다. 국회법 40조는 자신의 상임위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제사법위원회에 가게 되면, 의원들은 관례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쉬거나, 사건을 수임하지 않습니다. 국회 법사위는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 권한을 갖고 있으니까, 재판은 '상임위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도 금배지를 달고 용감하게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한 사례도 드러났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겸직한 경우라, 리포트 머리에 내세웠습니다.
법사위 소속 의원이 재판에 나갔는지 여부는, 판결문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판결문에 당시 상임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법정에 나왔는지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입소문을 들어야 합니다. 누가 그랬다더라 얘기 듣고, 콕 찍어 확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 지역구 의원이 법사위 소속 당시, 직능단체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소송 사건을 맡고, 법정에 금배지를 달고 나가 변론을 했다는 증언을 담았습니다. 국회의원이 변호한 원고 측이 승소했습니다. 피고 측은 역시 국회의원이 변론해서 막강한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케이스는, 국회법 어긴 것 아니냐, 똑 떨어지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해당 의원한테 직접 물었습니다. 그는 당선된 직능단체 회장의 정치적인 행보가 괘씸해서 사건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그건 알았고요, 법사위 소속으로 부적절한 변론 아닌가요? 의원은 사건 내용이 '상임위 직무와 관련' 없으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 국회법 40조를 대단히 좁게 해석한 것인데, 사실상 무한대의 자유를 주장하는 의원님의 논리입니다. 법사위에 갔다고 휴직하는 다른 의원들은 바보인가요? 계속 물어보니까, 의원은 소송 당사자에게 물어보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무슨 축사를 하셔야 된다고.
부적절한 '법사위 금배지 변론'은 판결문을 검색하다 나오기도 합니다. 판결문 수십 건을 받은 국회의원 가운데는, 법사위를 거친 경우가 꼭 있습니다. 판결문 선고 날짜와 법사위 재직 날짜를 비교하면, 금세 나옵니다. 두 기간이 겹치지 않더라도, 사건의 변론 기일 등 재판 일지를 확인해보면, 법사위에 있을 때 변호사 활동을 했는지 여부가 드러납니다. 한 국회의원에게 법사위에 있을 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소속 로펌에서 이름을 그냥 올린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조기축구 명단에 이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법원 재판인데, 의원실은 아무튼 이름을 도둑맞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판결문에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는, 차라리 투명한 편입니다. 판결문 같은 공문서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스텔스처럼 겸직할 수도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고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달면 됩니다. 한 로펌에는 현역 의원 2명이 고문 변호사로 등재돼 있습니다. 로펌 홈페이지도 현역 의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원실 찾아가, 실례지만 보수는 얼마나 받으시냐고 물었더니, 받는 돈은 없다고 했습니다. 국회사무처에 돈을 받는 것으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더니, 의원한테 직접 들어오는 사건을 로펌에 넘겨주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고 말이 바뀌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장이 하는 일을, 의원님께서도 직접 하신다는 얘기입니다.
분명히 국회의원과 변호사라는 '투잡'을 뛰는데, 판결문에 이름도 없고, 사건을 로펌에 넘겨준 흔적도 안 남고, 보수 내역은 로펌만 알고, 국회사무처에 소득 내역을 신고할 필요도 없고, 신고를 안 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하고, 허위 신고를 해도 검증 방법이 없고, 제재할 규정도 없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겸직이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이 '금배지 변호사 친화적 환경'은, 국회법을 만든 국회의원 스스로가, 본인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지금껏 너무한 것 아니냐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직업의 자유라는 논리에 막히기도 했고, 변호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겸직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거냐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습니다.
'대표 변호사' 타이틀도 고문과 비슷합니다.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인, OOO 변호사 사무실에는 이른바 새끼 변호사들이 또 있습니다. 누구나 전화해서 물어보면 됩니다. 거기 변호사님 몇 분이 계시죠? 없는데요, 라는 대답은 거의 없습니다. 고문, 대표, 소속 변호사, 이런 겸직은 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입니다. 18대 '금배지 변호사' 52명 가운데, 소득이 있다고 신고한 사람은 38명, 소득이 없다고 한 사람은 5명이었습니다. 9명은 소득 신고 규정을 그냥 무시했습니다. 무시해도 별 탈이 없으니까요.
국회의원들의 해명, 때로는 당당하고, 때로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그게 뭐 문제가 되나요? 라고 되묻습니다. 19대 공천이 코앞이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현행법 틀 안에 있다는 떳떳함의 표현입니다. 법사위 소속으로 사건을 맡은 의원은, 사건 내용이 '법사위 직무'와 관련이 없어서 괜찮다는 논리를 내세웠죠. 금배지 믿고 OOO 의원님 아니면 사건 안 맡기겠다는 고객도 있다고 합니다. 로펌에서 의원님 모르게, 변호인에 올린 것뿐이다, 즉 이름 도둑맞았다는 해명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판결문에 이름 올랐으니 부인은 할 수 없지만, 어떤 사건인지 알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럼 그 사건을 금배지 변호사에게 맡긴 의뢰인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국회의원이 변론하면 다르겠지 싶어서 사건 맡겼더니, 이제 와서 사건 내용도 모른다? 이렇든 저렇든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국회, 변호사 겸직의 천국. 변호사들은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천국'에도 대거 몰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공천 신청자 가운데 84명, 민주통합당 신청자 가운데 55명, 모두 139명의 법조인이 금배지를 달겠다며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18대 국회 때도 그랬습니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변호사 출신이 52명. 거의 20%에 육박합니다. 전체 국민 가운데 변호사는 어느 정도일까요. 0.035%라고 합니다. 변호사 직종은, 괴력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호사를 겸직하는 국회의원 전체를 손가락질 할 수 없지만, 일부 국회의원은 오늘도 변호사 부업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헌법상 직업의 자유도, 국회법상 겸직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18대의 경우 자유의 총량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겸직의 자유가 커질수록, 반비례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의정활동에 투입할 국회의원의 시간과 노력입니다. 미국은 의원 연봉의 15%가 넘는 외부 수입을 못 벌게 하고, 영국은 겸직 신고를 제대로 했는지 철저히 검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안 합니다. 미국과 영국은 의원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는 겁니다. 정치권은 변호사 겸업 금지를 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선거용 '잠깐 검토'에 그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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