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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의 아들이 밝힌 '아버지 김성근' 3대 일화

입력 : 2012.02.21 18:09|수정 : 2012.02.21 18:09


묻는 쪽이나, 답하는 쪽이나 너무 많이 반복했다 싶으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야신'이 아닌 '아버지' 김성근에 관한 이야기. 그의 아들 김정준 위원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단어다.

20일 기자가 만난 김정준 SBS ESPN 야구 해설위원은 "글쎄요, 요즘은 많이 약해지신 걸까요.."하며 말끝을 흐렸다. 얼마 전 고양 원더스가 훈련하고 있는 일본 가고시마에 급히 다녀 온 그는 훈련 도중 다리를 다친 아버지 걱정을 했다. 영락없는 '아버지 아들'이다.

하지만 으레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부자(父子)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프로야구에 바친 엄격하고, 완고한 아버지의 아들로 커 나간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어느덧 그 아버지 곁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야신'의 뒷모습이 누구보다 크게 보이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들 김정준 위원이다.

그런 김 위원이지만 최근 그 '깐깐하던' 김성근 감독이 많이 유해졌다는 고백아닌 고백(?)을 전하기도 한다. "아버지로, 감독님으로 그리고 같은 업계에 계신 선배님으로 제게는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존재인 것이 사실이죠. 밖에서 보는 것처럼 말도 거의 없으시고, 때로는 정말 무서운 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제게 의지하시는 모습도 이제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도 다리를 다치신 걸 보고 마음이 짠했어요. 자식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상다반사가 '드라마'는 아니다. "다들 감독님이 집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하시죠. 늘 심각하고, 뭔가 의미심장한 분위기 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아버지는 WBC때 해설을 하신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해설위원 일, 막상 시작해 보니 쉽지 않네요"하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어, 그래, 그거 쉽지 않어"하시더라고요. 뭔가 더 있을 것 같죠? 그게 끝이에요. 정말 쉽지 않으니까, 쉽지 않다고 하신거죠.(웃음) 가끔 저희 가족끼리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개그 콘서트에 나오는 허무가족 뭐, 그런 장면이 떠오를 정도라니까요."

그러나 김정준 위원은 이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자신 또한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을 보며 컸노라 살짝 털어 놓는다. 그가 가슴 속 한 켠에 몰래 기억해 둔 '아버지' 김성근 감독의 3대 일화를 소개한다.
이미지"하나는 초등학교 때요. 아버지가 신일고 감독을 하시고 계셨을 텐데, 이미 그 시절부터 엄청난 시련들이 지척에 있었죠. 하루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그 만원버스 안에 아버지가 쓸쓸히 타고 계시는 거에요. 어린 나이에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때, 저한테 축구팀 골키퍼가 쓰는 장갑을 한 번 주신 적이 있어요. 아마 OB 감독일을 그만하시게 됐을 즈음인 것 같아요. 무슨 의미인지 말씀은 안 하셨죠. 앞으로는 야구용품은 줄 수 없으니까, 대신 주신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그냥 어디 축구팀에서 받아 오신 것일지도 몰라요.(웃음) 그런데 당시 저한테는 의미가 컸어요. 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마지막은 대학교 때 해주신 말씀입니다. 제가 선수로서 늘 잘 나갔던 것은 아니고, 힘든 시절도 많았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에요. '설령 네가 거지가 된다고 해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저에게는 쉽게 표현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어요. 이 세상이 다 몰라도 아들만은 알 수 있는 아버지 모습이 있는 것처럼요."

인터뷰 말미 해설자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김정준 위원에게 2012 시즌 중 '부자(父子) 더블 해설'을 넌지시 제안했더니 "글쎄요, 과연 하려고 하실지... 음, WBC는 같이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하하하"하며 혼자 크게 웃는다. 해설하는 내내 이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갈 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오기는 사실 듣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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