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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 맥주" 홍보해놓고…병 뒷면엔 '중국산'

정명원 기자

입력 : 2012.02.15 16:42|수정 : 2012.02.15 18:19

대형마트 수입맥주 원산지 표시 '꼼수'


대형 마트에서 요즘 가장 빠른 판매 증가율을 보이는 술이 뭘까요? 바로 수입맥주입니다. 대형 유통업체 외에 실제 술집에서 판매되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형 마트에서 집계한 통계만 놓고 보면 수입맥주는 1년 전에 비해 무려 56%나 더 팔렸습니다.

반면 국산 맥주는 -3.2%, 소주는 -0.1%, 민속주는 -2.8%로 매출이 1년 전보다 감소세를 보였고, 와인은 2.5%, 양주도 1.4%로 소폭 증가에 그쳤습니다. 요즘 대형 마트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수입 맥주의 종류와 양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즐겨 찾고 있는 것이 이유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수입 맥주 원산지 표시를 보면 이상한 문구들이 많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기린 맥주(브랜드 국가명: 일본), 아사히 병맥주(브랜드 국가: 일본), 삿포로 실버컵(브랜드 국가: 캐나다) 등입니다. 가격표 바로 옆에 이런 식으로 큰 글자로 적혀 있습니다. 어떤 대형 마트에서는 아예 '일본 아사히 병맥주'라고 쓰거나 일본이나 미국 등의 국기를 가격 표 옆에 붙여놓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당연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맥주들이 일본산이나 미국산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해당 맥주 뒷 면을 살펴보면 작은 글자로 중국산 기린맥주, 중국산 아사히 병맥주, 캐나다산 삿포로 병맥주라고 적혀 있습니다. 삿포로 실버컵은 캐나다 산입니다. 젊은 층에서는 아시는 분들이 늘었지만 벨기에산처럼 표시돼 판매되는 호가든 맥주의 원산지는 광주광역시, 즉 국산입니다. 미국산인 것처럼 팔고 있는 버드와이저 역시 원산지는 국산입니다.

대형 마트에서는 제품을 진열할 때 일부러 중국산 아사히 병맥주를 일본산 맥주들 사이에 배치합니다. 특별 행사를 할 때도 일본산 맥주 옆에 일본산이 아닌 맥주를 배치해 놓고 제품 이름 옆에 '브랜드 국가명 일본' 이라고 표시하기도 합니다.



대형 마트 측은 수입 맥주 브랜드 이름이 어느 나라인지 모르는 고객들을 위한 정보 제공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수입 맥주가 상대적으로 국산 맥주보다 가격이 2~3배 이상 비싸고, 수입맥주를 찾는 소비자들은 가급적 오리지널 국가에서 수입된 제품을 찾는다는 심리를 노려 매출을 늘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 취재 중에 만난 소비자들은 '중국산 아사히 병맥주' '중국산 기린맥주' '국산 호가든 맥주' 등으로 정확히 표시됐다면 그 돈을 주고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맥주는 물이 중요한 구매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원산지가 중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현행 법에서는 대형 마트가 하고 있는 이런 방식의 원산지 표시 꼼수를 단속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행 대외 무역법은 수입업체나 제조업체가 제품에 원산지를 제대로 표시했는지가 단속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맥주 병이나 캔에 원산지를 표시했냐는 건데 그건 제조업체나 수입업체가 하는 행위들이고 여러 차례 단속에 적발된 경험도 있어서 해당 회사들은 제품에 원산지 표시를 정확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형 마트가 하고 있는 이런 꼼수 표시가 소비자에게 정확한 원산지를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대외무역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십니까? 단속 권한을 위임 받아 집행하고 있는 관세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쪽이었습니다. 자세한 취재 내용을 설명했더니 비록 법 조문으로는 단속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소비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결정하는 정부 산하 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에 이 사실을 통보해 확실한 유권 해석을 받고 그걸 근거로 단속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마케팅 컨설턴트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건 모르는 사람 속으라고 하는 마케팅 전략인데 소탐대실이다. 저렇게 속이다가 소비자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아예 돌아서면 그때는 어떻게 다시 돌려 세울 것이냐?" 당국에 적발되느냐 아니냐를 떠나 대형 마트에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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