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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행한 이를 동정하는 것이 인간이다

한세현 기자

입력 : 2012.01.30 19:01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기자들에게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답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입니다. 실제로 저도 얼마 안 되는 짧은 기자생활을 하며, 제가 기자되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에서 노숙자까지, 성직자에서 범죄자까지 그 폭도 넓고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요즘 같은 연말연초나 명절 때면 꼭 만나게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소외된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홀몸노인과 노숙자입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즐거워야 할 명절에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겠죠. 때마침 서울시가 이렇게 혼자 지내면서 설 차례도 못 지내는 극빈층을 위해 공동 차례를 마련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68살 전경천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작은 단칸방에서 20년째 지내고 계셨습니다. 6.25때 가족이 내려와서 강원도에 정착한 할아버지는 30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왔다가 몸을 다치면서 가족과 멀어졌습니다. 몸이 불편하니 직장을 제대로 못 구했고, 결국 술에 의지해 살다보니 몸은 더 망가졌습니다. 그러던 새 가족들은 아예 연락조차 받지 않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쪽방에서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수급 대상자 연금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제 손을 잡고 웃으시며 고맙다는 말씀만 계속 하셨습니다. 나라에서 생활비 보태주고, 사회복지사들이 찾아와 불편한 점이 없는지 챙겨주고, 간혹 이웃들도 생필품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돌봐준다며 "모든 게 다 고맙고 감사하지요"라는 말씀만 계속 하셨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할아버지와 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처한 분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를 만나며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복지', '나눔'이란 일종의 '가진 자들의 베풂'이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거치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언론사 입사 공부를 하며 읽었던 진화생물학자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기적인 인간이 자기를 희생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사회 진화론적 관점에서 찾았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볼 때 자기의 사욕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부족은 오래 가지 못하고 멸망한 반면 서로 돕고 이타적으로 행동한 부족이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케네디의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돕지 못한다면 부유한 소수마저 구할 수 없을 것이다"는 연설과도 뜻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힘없고 가난한 다수의 생활을 보호하고 발전시켜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이야 말로 모든 정치의 시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국가와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한 다수를 보호하고 돕는 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인 동시에 나 자신은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동의 선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바야흐로 '복지'가 사회적 화두가 된 요즘, 우리에게 복지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개그맨이 풍자했듯이 전통시장 다니면서 국밥 같이 먹고, 쪽방촌 방문하는 이런 일회성 이벤트로 우리 사회의 복지수준이 높아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참다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요? 결국, 역사의 진보란 어느 순간 나타난 초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런 작은 노력들을 꾸준히 해온 다수에 의해 가능했을 것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고향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먹을거리를 챙겨 전경천 할아버지 댁을 다시 찾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은 굳게 다쳐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즐거운 연휴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폐지를 줍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좋고, 행복하죠. 근데, 곧 잊혀진다는 게 씁쓸하죠"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끝으로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어느 사회복지사의 얘기를 전해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어릴 때 제가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제목이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이었습니다. 그 책 첫 번째 줄에 이런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불행한 이들을 동정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구절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