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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난방비 폭탄' 알아야 피합니다

박세용 기자

입력 : 2012.01.29 13:34|수정 : 2012.01.30 16:33


단순해보였던 난방비,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취재할수록 머리를 싸매도록 만드는 복잡함이 있습니다. 유량계 다르고, 열량계 다르고, 단독주택 다르고, 아파트 또 다릅니다. 취재는 결국 월간지 식으로 해놓고, 방송은 3분, 길게 한다고 했는데도 성에 안 차고, 기자가 성에 안 찬 만큼, 시청자들의 문의전화도 빗발쳤습니다. 방송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에 고개 꾸벅 숙이면서, 몇 가지 자체적으로 질의응답 했습니다.

Q 유량계는 무엇이고, 열량계는 뭔가요?

A 유량계와 열량계는 서로 다른 방식의 계량기입니다. 유량계는 방바닥 밑에 깔려 있는 배관, 그 속으로 흘러가는 난방수(뜨거운 물)의 총량을 측정합니다. 열량계는 난방수가 집안에 들어올 때의 온도를 측정한 뒤에, 집안을 한 바퀴 돌고 나갈 때의 온도를 측정해, 그 열량의 차이를 계산합니다. 뜨거운 물을 많이 쓸수록, 즉 유량이 늘어날수록 열량도 늘어납니다. 정리하면, 유량계는 사용한 물의 양으로 난방비를 계산하고, 열량계는 사용한 열의 양으로 난방비를 계산합니다.

Q 유량계와 열량계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A 유량계와 열량계는 서로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수십 년을 거치면서, 제품도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계량기 숫자가 올라가는 방식도 그게 그겁니다. 어떤 제품은 숫자가 전자식으로 올라가기도 하죠. '열량계'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는 계량기도 있습니다. 혹은 집 밖에 있는 검침부에 '적산열량계'라고 써 있기도 합니다. 헷갈린다면 관리사무소 등에 물어보면 됩니다. 인삼과 장뇌삼 구분하는 것 같죠?

Q 난방비 폭탄은 왜 맞나요?

A 난방 밸브와 난방수 유량의 관계 때문입니다. 난방비 한 푼 아끼려고, 대개 방과 거실 밸브 가운데 일부만 열고 지내시죠? 그렇게 하면 유량이 조금 줄어들기는 하지만, 실험해보면 큰 차이 없습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실험했는데, 방과 거실 난방 밸브 5개를 모두 열었을 때는, 1분에 10리터 정도의 난방수가 흐릅니다. 4개를 잠그고 1개만 열면, 밸브를 5분의 1만 열었으니까, 난방비 많이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난방수는 5분의 4가 흐릅니다. 밸브 1개를 절반만, 이렇게 지내시는 집 진짜 많은데요, 아무튼 한 개를 절반만 열면, 1분에 난방수 7리터가 흐릅니다. 수압은 일정한데 5갈래 길이 1개로 줄면, 배관 한 곳으로 흐르는 난방수의 압력이 세지면서 유속은 오히려 빨라지는 겁니다. 절약을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유속이 빨라진 만큼, 배관 하나당 난방 단가는 비싸집니다. 유량계를 단 집은 폭탄 맞기 쉽고, 열량계를 단 집은 그나마 조금 덜합니다.

Q 유량계 달았다고 왜 요금 폭탄 맞기가 더 쉽나요?

A 난방 배관을 어떻게 조절하든, 배관을 아예 닫고 살지 않는 이상, 난방수 유량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량 줄이기가 어려우니까, 유량으로 요금을 책정하는 난방유량계를 설치한 집은, 난방비 줄이기 힘들어집니다. 특히 밸브를 처음 열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난방 배관이 어느 정도 데워지면, 돈 먹는 하마 유량계의 단점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밸브를 처음 열었을 때 40도로 집안에 들어온 난방수가 차가운 방바닥에 열을 많이 빼앗기고, 35도로 집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이 데워지면 40도로 들어온 난방수는 38도, 39도 상태에서 집밖으로 나갑니다. 이때 열량계는 빼앗긴 열량만큼, 즉 1도 내지 2도의 차이와 유량을 계산해 난방비를 계산하지만(유량이 많아지면, 열량도 따라서 올라갑니다), 유량계는 이런 거 안 따지고, 무조건 물 흘러간 만큼 다 냅니다. 겨울에는 보통 밸브를 열어놓고 자는데, 방이 어느 정도 따뜻해진 새벽 1~2시, 당신이 잠든 뒤부터, 난방비는 줄줄 잘도 올라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량계가 이래서 쥐약입니다.

           

Q 유량계를 달면 얼마나 손해인가요?

A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실험 결과, 단독주택인 경우 유량계를 달면, 열량계보다 1년 평균 1.6배의 난방비를 더 내게 됩니다. 물론 실내를 동일하게 난방했다는 조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유량계 특징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난방 밸브를 연 초기엔 유량계와 열량계 요금이 비슷하게 올라가지만,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유량계 요금이 열량계 요금을 앞지르기 시작합니다. 유량계를 단 집은 특히, 영하 10도 이하의 맹추위에서, 열량계로 난방비를 계산했을 때보다, 최대 200%까지 내고 산다고 합니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사시는 분들은, 계량기 한 번 확인해보시고, 유량계면 열량계로 바꾸시는 게 좋습니다. 열량계가 조금 더 비싸긴 한데, 본전 뽑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아파트에 살면? 우리 집만 달랑 열량계로 바꾸는 건 안 됩니다. 요금 책정 기준을 한 집만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Q 왜 유량계가 보급되었나요?

A 국토해양부가 1991년에 처음 만든 주택건설기준에 따르면, 아파트를 지을 때는 열량계를 시공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때도 유량계는 있었지만 시공이 금지됐습니다. 그런데 열량계를 쓰다 보니까, 잔고장이 많고, 90년대 초반에는 수입 제품이 많아서 고치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기존 열량계와 함께 유량계 시공도 허용됐습니다. 난방비가 불합리하게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 10년 동안, 너도나도 유량계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3~4만 원이면 새로 달 수 있고, 구조가 단순해서 고장도 덜 나니까요. 아파트 시공사들도 저렴한 유량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10년 동안 새로 지은 아파트는 물론이고, 기존의 아파트도 단지 별로 유량계로 교체한 곳이 많습니다. 주민들에게 유량계가 더 좋다면서 바꿔 달았습니다. 고장이 적으니까, 주민보다 관리사무소가 더 좋다는 게 진실에 가깝겠습니다만. SH공사 집단에너지사업단과 한국지역난방공사 관할 지역에서만 현재 73만 가구가 유량계를 달고 있습니다. 제가 자체적으로 문의해서 합산한 것이고, 국토해양부 통계는 없습니다. 지방까지 합치면 100만 가구가 훌쩍 넘을 것입니다.

Q 아파트 유량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유량계와 열량계는 난방비를 부과하는 방식이므로, 아파트는 단지 별로 주민들이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유량계 싫다고 우리 집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한꺼번에 유량계로 교체 공사를 했듯이, 열량계로 바꾸는 것도 모든 주민들이 한꺼번에 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합심하면 안 될 것이야 없습니다만, 당장 내 호주머니에서 10만 원 이상 나간다고 생각하니,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난방비를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내가 돈을 쓰는 것이 더 싫은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 예산으로 열량계 교체 예산을 마련한 뒤에, 향후 절약하게 되는 난방비를 공공기관에 이전하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내 돈 안 써도, 열량계를 달 수 있는 법은 있다는 얘기입니다.

Q 열량계를 달면 난방비가 정말 줄어드나요?

A 유량계를 열량계로 교체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독주택인 경우와 아파트의 경우가 서로 다릅니다. 단독주택의 경우엔 열량계를 달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흐르는 난방수를 절약하지 않아도 난방비 절약은 가능합니다. 유량계로 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이, 열량계 방식보다 연 평균 160% 많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아파트는 다릅니다. 아파트는 현재도 단지별로 '사용한 열량'만큼 지역난방 사업자(SH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에게 요금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달린 유량계는, 아파트 단지에 부과된 요금을 가구별로 얼마씩 낼 것인지를 나누는 기준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파트의 경우엔, 모든 집이 열량계로 바꿔도, 요금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가구마다 요금을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부과할 수 있게 됩니다.

Q 난방수 사용을 근본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은 있나요?

A 유량계를 열량계로 바꿔 달아도, 어차피 난방수가 많이 흘러가면, 사용한 열량도 늘어날 것이고, 치솟는 난방비를 막을 수 없습니다. 난방수 사용량 자체를 줄여야 열량도 그만큼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이미 2년 전에 실내 온도 혹은 난방수 수온에 따라, 주-밸브를 자동으로 조금씩 여닫을 수 있는 비례 제어식 열량계를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직접 밸브를 미세하게 조절하거나, 아니면 방에서 실내온도를 설정하면, 밸브가 완전히 열리거나 완전히 닫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디지털처럼 on 혹은 off만 가능한 방식입니다. 연구원은 이 비례 제어 기술을 '신한콘트롤밸브'라는 회사에 이전했는데, 이 회사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경영 사정이 계속 안 좋습니다. 시제품은 나왔는데, 대량생산이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서 상용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집에 들어오는 난방수 온도가 낮아서, 지역난방 설정온도를 아무리 높여도, 방이 미적지근한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비싼 지역난방비, 돈은 돈대로 내면서,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운 분들, 어디 안 계신가요?? 여러분의 애로사항,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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