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화성 탐사선 '포보스-그룬트'호가 16일 새벽 태평양에 추락했습니다.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정확한 추락 시각은 우리 시간으로 오늘 새벽 2시 45분, 추락 지점은 칠레 서쪽 태평양으로 칠레군도 웰링턴 섬에서 서쪽으로 약 1250km 떨어진 곳입니다. 마침 이 곳은 임무를 끝낸 러시아 우주화물선 '프로그레스'호가 수장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다행히 추락 지점이 해상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포보스-그룬트호는 위험물질을 싣고 있어 자칫 큰 피해가 날 가능성도 우려되던 참이었습니다. 맹독성 액체 연료인 '하이드라진(hydrazine)'과 사산화이질소를 7.5톤 가량 싣고 있었고, 이 연료가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연소되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은 채 지상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천문연구원 내에 위성감시 상황실을 만들어 탐사선의 동태를 주시하는 등 세계 각국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탐사선의 진로를 실시간으로 체크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탐사선도 인명피해 없이 잘 끝났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탐사선? 그런 게 있었어?' 할 정도로 약간의 무관심 속에 지나갔지만, 만약 탐사선이 조금만 더 일찍 추락했다면 한반도에 추락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탐사선의 추락 정보를 담당하는 천문연구원 측은 마지막 예상 자료에서 '이번 예상 추락 궤적에는 오차 범위 내에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통과 시각은 02시 08~09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좀더 상세한 예상 궤적을 보면, 탐사선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파푸아뉴기니를 향해 동남쪽으로 추락하다가 뉴질랜드 동쪽을 거쳐 칠레 서쪽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추락 시각이 불과 30~40분만 더 앞당겨졌더라면 한반도에 추락할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시간 오차 범위가 ±72분이기 때문에 이는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탐사선의 실제 추락 위치는 칠레 서쪽으로 한반도와는 거의 지구 반대편이지만, 위성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그런 지리적 거리보다는 위성의 최종 궤적이 어디를 거쳤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주과학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합니다. 현재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의 수는 계산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2700개, 여기에 부서지거나 다른 이유로 떨어져나온 파편, 조각의 수는 7천여개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수명을 다한 위성을 포함한 이 우주물체들은 결국 언젠가는 지구로 떨어질 운명에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은 대기권을 통과하며 연소되겠지만, 이번 포보스-그룬트호 역시 지구귀환캡슐 등은 연소되지 않고 해상에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지구귀환캡슐 자체가 대기권의 마찰열을 뚫고 지상에 떨어지도록 내열 설계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용케 인명피해가 한 건도 없었지만, 이는 시간문제'라고 단언합니다. 발사되는 위성 숫자가 더 늘어나는 앞으로의 30년, 대부분의 수명이 20년을 넘기지 못하는 위성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2050년 이후가 되면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많은 위성이 추락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위성들이 해상이나 사막에만 떨어지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인구 밀집 지역에 위성이 추락하면서 대형 재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이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저도 지난 토요일 리포트에서 이와 관련해 위성 조기 탐지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썼지만, 현재로서도 2~3시간 전에야 정확한 추락 시각과 장소를 알 수 있는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많은 국민들이 위성이 추락하는 지 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피해 예방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번 처럼 우리나라가 오차범위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정부 차원에서 경보나 주의보를 발령하는 것도 피해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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