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크로이츠펠트-야콥병(iCJD)으로 숨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 언론이 '인간광우병 환자 사망'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고, 이는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금세 퍼져나갔습니다. 이 소문은 다시 순식간에 '국내에서도 인간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정을 앞두고 이를 정부가 조직적으로 숨겨왔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보건 당국의 조사 결과, 숨진 환자는 뇌수막종 치료 과정에서 CJD 환자의 뇌경막을 사용해 같은 질병에 걸렸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간광우병으로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과 무관하다는 정부의 설명이 나오고 나서야 이 소문은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우리 국민들이 광우병에 대해 갖는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반대'를 외치며 들었던 촛불은 꺼졌지만 국민들 마음에 남은 연기와 그을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광우병의 역사와 원인 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광우병의 역사
○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멀쩡하던 양들이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고 방황하며 몸을 바르르 떠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절벽이나 바위에 몸을 기대고 긁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살이 벗겨지고 피가 나는데도 양들은 긁고, 긁고 또 긁었습니다. 이 이상한 전염병은 유럽 전 지역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렇게 많은 양들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수의사들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죽은 양을 부검해보니 신기하게도 뇌에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스펀지 모양의 뇌질환이란 뜻으로 '해면형 뇌증(spongiform encephalopathy)'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가렵다는 뜻으로 '스크래피'(scrapie)'라고 불렀습니다.
○ 1920년대 독일, '크로이츠펠트(Creutzfeld)'와 '야콥(Jacob)'라는 신경과의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치매환매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환자들 가운데 일부가 독특한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다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가 흥분해서 고함을 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습니다. 환자들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습니다. 그렇게 죽은 환자를 부검해 보니 '스크래피'와 마찬가지로 뇌 조직에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병을 처음 발견한 두 의사의 이름을 따 '크로이츠펠트-야콥병(Creutzfeld-Jacob Disease), 줄여서 CJD라고 불렀습니다.
○ 1950년대 파푸아 뉴기니. 어느 날부터 원주민들이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과하게 흥분했다가 돌연사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숨진 시체를 부검해보니 앞서 언급했던 'CJD'처럼 뇌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병을 원주민들 언어인 '쿠루'를 따서 '쿠루병(Kuru disease)'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뇌에 스펀지 모양의 구멍이 있다는 점을 볼 때 분명 'CJD'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끝내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000만 명에 한명 꼴로 발병하는 희귀병인 'CJD'가 왜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천 명이나 걸렸는지 그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현지 연구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식인풍습'이었습니다.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죽으면 망자의 뇌를 꺼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쿠루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을 추정했습니다.
○ 다시 양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양의 스크래피의 원인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의사들은 병원체가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곰팡인지, 기생충인지조차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실험 끝에 이 병이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를 갈아서 종이 다른 염소에게 주사해보니 염소도 '스크래피'에 감염된 것입니다.
이 실험은 당시 파푸아 뉴기니에서 '쿠루병'을 연구하고 있던 의사들에게도 큰 영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의사들은 '스크래피' 동물실험에 착안해, 인간과 영장류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쿠루병'으로 숨진 사람의 뇌를 갈아서 유전적으로 사람과 가까운 침팬지에게 투입한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쿠루의 뇌 조직을 투여한 침팬지들의 뇌가 점차 파괴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물실험이 아니었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종을 뛰어넘는, 무서운 인수공통전염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무서운 실험이었습니다.
○ 그럼에도 아직 이 괴질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동물들이 더 많이 늘어났습니다. 1963년 미국의 한 밍크농장에서 수많은 밍크들이 스크래피와 똑같은 증세를 보이며 죽어갔습니다. 부검해 보니 역시 뇌세포에 많은 구멍이 나있었습니다. 수의사들은 이 병을 '전염성 밍크 뇌증(Transmissibl Mink Encephalophady, 줄여서 TME)'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밍크사육은 매우 중요한 산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수의사들은 어떻게든 이 병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법과 치료법을 찾아야했습니다. 학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역학조사를 벌였고,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죽은 밍크들이 '소고기' 사료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예전부터 제대로 일어서서 걷지 못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이른바 '기립 불능소(Downer)'들을 동물용 사료로 사용해 왔습니다. 역학조사 결과, 바로 그 기립불능소로 만든 사료가 이 'TME'의 원인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수의사들은 밍크와 소의 전염관계를 더 자세히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젖소에게 'TME'에 걸린 밍크의 뇌 조직을 투여했습니다. 그러자 젖소들은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그렇게 죽은 젖소의 뇌를 갈아 밍크에게 다시 감염시켜 보았습니다. 밍크 역시 마찬가지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습니다. 이것은 이 괴질이 동물의 종에 상관없이 양방향으로 전염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끔찍한 결과였습니다. 1985년, 본격적으로 광우병이 발생하기 직전의 일이었습니다.

○ 1985년 4월, 영국 남동부 켄트주에서 역사상 최초의 광우병 소가 발견됐습니다. 젖소 한 마리가 갑자기 격렬하게 날뛰고, 경련을 일으키더니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농장주는 이 소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수의사를 불러 일단 안락사를 시켰습니다. 그 소는 육류가공 공장으로 운반돼, 부위별로 다른 동물의 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농장주도 수의사도 누구도 이 일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소엔 잘 안 걸리는 드문 병 가운데 하나에 걸렸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비극은 이미 시작된 뒤였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질병은 이후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번졌습니다. 1986년 초까지 남서부의 데번, 콘월, 서머싯 등지에서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소들이 확인됐습니다. 죽은 소를 부검한 수의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소의 뇌가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오랫 동안 스크래피를 연구해 왔던 영국의 수의사들은 이것이 양에게 발생하는 스크래피와 깊은 연관이 있는 병이라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붙었던 질병들과 이름과 비슷하게 '소 해면형 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줄여서 BSE)'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광우병(Mad Cow Disease)'라고 부르는 말의 원래 명칭이 바로 그것이입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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