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막을 내렸다. 재미도 재미지만 한글 창제를 모티브로 권력의 속살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히 밀본(密本)을 필두로 재상총재제(宰相總裁制)를 주창하는 사대부 세력과 애민군주(愛民君主)를 표방하는 세종의 치열한 논리싸움이 볼만 했다. 권력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현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지금까지도...
뿌리깊은 나무 19화에서 세종 이도와 본원 정기준이 정윤암에서 각자의 통치 철학을 놓고 한판 설전을 벌인다. 특히 정기준이 한글 창제의 위험성을 세종에게 역설하면서 던지는 대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곱씹어볼 단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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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준 : 누구나 지혜를 갖으면 쓰고 싶어진다.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모르겠는가? 그들의 욕망은 결국 정치를 향하게 돼 있어! 국가의 정책에 관여하려 들 테고 나아가서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들 것이다. ▲세종 :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그게 네가 말하는 지옥이냐? ▲정기준 : 이도! 동서 고금에 그런 무책임한 제도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정치는 책임이다. 유사이래 정치의 본질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어 정치는 오직 책임이야. 헌데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허면 그들의 지도자가 실정을 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 그 지도자를 뽑은 백성을 모두 죽여야 하나? |
정치는 책임이다. 이 부분은 정기준 말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설이다. 지위가 높다면 행위에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정치다. 최근 여당 대표가 퇴임하면서 '부덕의 소치'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구려의 모태가 됐던 옛 부여에선 가뭄이나 나라에 재난이 들면 왕이 희생되기도 했다. (물론 왕의 부덕이 재난을 불렀다는 고대 가치관에 기초했다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 대의정치, '책임은 누가?'
"(백성)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허면 그들의 지도자가 실정을 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정기준의 질문은 6백여 년이 흐른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에 답을 요구한다.
현대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의 원칙 하에 대리인을 선출하고 그에게 정권을 맡긴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면 그 성과를 따져 대리인 혹은 그의 세력에게 권력을 계속 맡길지 거둬들일지 결정한다. 대리인이 일을 잘 했다면 더 거론할 게 없다. 공동체가 자축하면 그 뿐이다. 문제는 실정을 했을 때다.
현 정치제도 하에서 실정을 한 대리인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박탈당한다. 그것을 책임이라고 하면 책임이다. 하지만 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실정을 했다고 해도 특별히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냥 그걸로 끝이다. 잡았던 권력을 내려놓을 뿐이다.
결국 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실정으로 사회가 피폐해져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민과 언론이 아무리 비난을 쏟아내도 그저 감정적 '배설'에 지나지 않는다. 정기준의 말처럼 '그 지도자를 뽑은 백성을 모두 죽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 책임=피해, 국민의 몫
그럼 정녕코 대의 민주주의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 번만 생각을 더 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실정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 즉 국민이 책임을 지게 된다. 정기준 말처럼 죽이지는 않지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것이다. (다만 책임 즉, 피해가 어떻게 분산되냐는 좀 더 따져볼 문제다. 대체로 '지도층'이라 불리는, 그래서 실정의 책임에 가까운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이, 그저 이끄는대로 따라간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떠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망각한다. 그저 우리가 뽑은 대리인을 비난하는데 급급하다. 그리고 선거로 모든 심판이 이뤄졌다 믿는다. 비난을 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피해는 이미 국민들이 본 것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비난에 매달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 '감정적 비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지난 2004년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탄핵 사태가 발생했다. 헌정 사상 처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손에 탄핵 소추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해 총선거에서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당은 몰락했다. 선거를 통한 국민 심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민심에 반한 국회의 행동을 표로써 심판하는 건 당연하다. 또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대리인이 민의에 반하게 갈 때는 집회 등 표현의 자유를 활용해 이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감정이 개입되는 건 곤란하다. 갈등이라고 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것은 민의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민심이란 늘 노출돼 있는 것이 아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그런 민심의 흐름을 알았다면 그들도 탄핵 소추를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선에서 몰살 당할 걸 알면서 탄핵 소추를 강행할 만큼 바보는 없다.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국회의원들이다.
또 하나, 탄핵소추권은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다. 권한은 사용을 전제로 한다. 물론 오용의 위험이 있다. 이를 위한 안전장치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다. 탄핵소추를 한다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그에 상응하는 결정이 있어야 비로소 최종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당시 탄핵 소추는 헌정 이래 초유의 사태였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정한 법 절차를 따라 실행된 첫 사례다. '국민적 분노'를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면 될 문제가 아닐까 한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국회의원들도 국민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 대의 정치는 책임 정치
요즘들어 정당정치·대의정치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대의 정치는 책임 정치다. 대리인의 책임 뿐 아니라 뽑은 사람의 책임도 함께 한다. 현대 대의정치가 정기준이 지적한대로 "그런 무책임한 제도"가 되지 않기 위해선 뽑아준 사람들 뿐 아니라 뽑힌 사람들의 책임도 잊어선 안 된다.
선거는 단순히 한 표를 행사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엄중한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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