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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의와 위로, 어떻게 다른가

김요한 기자

입력 : 2011.12.22 08:52

정부의 입장 발표를 보며


정부가 20일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북한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언론이 '정부가 조의를 표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 정부는 조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조의나 애도 등의 표현 대신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해석하기 참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지요.

그럼 조의와 위로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조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명사) 남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

그러니까, 김정일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않고, 슬퍼하는 북한 주민들은 위로하겠다는 뜻 정도가 되겠죠? 정부 차원의 조의 표시 여부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일이 커지기 전에 김 위원장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위로하는 선에서 논란을 비켜가자는 전략적인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아서 정상회담까지 약속했던 북한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던 경험도 있고, 국제적인 상황도 있으니 적당히 불을 꺼야 한다고 판단했겠지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지혜로운 처사였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정부의 가치관을 극명히 드러낸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가치관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중요한 순간, 시급함을 요하는 판단과 결단은 평소 가치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의 깊이, 가치관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긴급한 순간, 올바른 판단과 적절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 부적절한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평상시에는 그런 게 드러날 일이 별로 없지만, 시급하거나 긴급한, 위중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는 여지없이 그 깊이와 수준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바람이 불어야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지는 것처럼요.

정부는 지금껏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마주할 때마다 깊은 고민과 성찰로 다져진 철학이나 원칙의 결과물 보다는 그저 욕을 덜 먹는데 유용한 논리를 내놓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에 표명한 정부의 입장 역시도 제게는 '조의 표명을 하라'는 무리에게는 '사실상 조의 표명 했잖아'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무리에게는 '조의 표명이 아니었다니까'라고, 할 말 못하게 만들 궁색한 면피용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명확한 철학이 있으면 욕을 먹더라도 명분이 있고, 그 명분이 옳았다면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지만 철학이 없어 그저 욕 먹지 않는데만 급급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금의 여러 문제가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들 말을 듣지 않아 생긴 거라는 말이 많지만, 글쎄요. 듣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안되는 게 진짜 문제 아닐까요? 철학과 세계관의 부재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 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다 통용되는 말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