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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위 버티려다 맞은 억울한 죽음

안서현 기자

입력 : 2011.12.16 21:59

어느 10대 시각장애인의 참변…에너지 빈곤층 대책 시급


머리가 띵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화재 현장에 가면 으레 나는 참기 어려운 냄새. 골목 안에 집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아주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면 그곳에 18살 박 모군의 집이 있었습니다.

현관문 안 좁은 길을 따라가면 4평 남짓한 집이 나옵니다. 부엌과 이어지는 곳엔 거실 대신 '방'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방과 부엌을 구별하는 문은 원래 없는 건지, 불에 타버린 건지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부엌은 1평, 방은 3평인 셈입니다. 부엌에서 나온 뒤 방쪽 외벽을 따라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따라 걸어가면 손바닥만한 크기의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말 그래도 '단칸방'인 이 집에 박 군을 포함해 모두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박 군은 시각장애가 있어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질 증세도 있고, 다리도 불편했습니다. 박 군의 할머니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박 군의 아버지는 몇년 전까지 채소 장사를 했지만, 지금은 직업이 없습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인 박 군의 형이 집의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몸이 아픈 동생과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돌봤습니다.

하지만 버는 돈은 턱 없이 적었고, 추운 겨울이 오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박 군의 가족은 집에 있는 기름보일러를 땔 돈이 없어 2년 동안 한 번도 보일러를 틀지 못했습니다. 냉골 속에서 괴로워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위해 박 군의 아버지는 부탄가스를 이용해 낚시용 버너를 방 안에 켜놓고, 바닥엔 전기장판을 깔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추위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그날 따라 집은 몹시 추웠습니다. 전기장판도 역부족인 추위였고, 박 군의 아버지는 추위에 떠는 어머니와 아들을 위해 낚시용 버너를 켜 놓고 잠시 외출했습니다. 그 사이 일이 터졌습니다. 갑자기 타오른 불길이 순식간에 단칸방을 집어 삼켰습니다. 네 식구가 살기에 턱 없이 비좁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만큼은 아늑했던 그 공간은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불과 8분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박 군의 할머니는 다행히 이웃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신속히 구조됐습니다. 불이 나기 직전 방에서 나와, 집 밖에 딸린 화장실에 가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던 박 군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중증 치매인 할머니도 박 군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박 군은 싸늘한 주검으로, 잿더미가 된 집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박 군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 군의 아버지는 손이 까맸습니다. 입고 있던 새하얀 웃도리도 거뭇거뭇합니다. 불이 난 집 안 구석 구석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며, 만지며, 오열했을 흔적들입니다. 그는 어머니가 입원한 고대 병원부터 찾아갔습니다. 치매를 앓았어도, 아들만은 늘 알아보시던 어머니는 그날만큼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간지럼을 태워 드리자, 언제 그랬냐는듯 아들을 보며 아이처럼 웃습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박 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장례식장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영정 사진 속에는 언제나 착하고 말 잘 들었던 막내 아들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버너를 켜놓고 나온 자신이 원망스러 누구도 탓하지 못했습니다.

                    

기자와 만난 박 씨는 말했습니다. 기름 값이 없어 2년 동안 보일러를 한번도 틀지 못했다고. 상대적으로 난방비가 덜 드는 가스보일러로 바꾸고 싶었지만, 설치비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전기장판이 위험하고, 부탄가스가 위험한 건 자신도 잘 알았지만, 추위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저렴한 가스보일러를, 가난한 사람들은 값비싼 기름보일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난방비도 없었습니다.

박 씨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부릅니다.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써야 하는 사람들로, 이런 가정은 120만 가구가 넘습니다. 이들에겐 전기장판이나 부탄가스가 냉골을 참아낼 수 있는 유일한 난방 도구입니다. 이들에게 연간 17만 원 규모의 에너지 쿠폰을 지급하는 내용의 '에너지복지법'이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10월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국회에서 표류 중입니다. 정부와 이웃이 에너지 빈곤층을 외면하는 사이, 이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겨울나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 군의 죽음에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