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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지는 상생인데, 골은 더 깊어졌다'

정호선 기자

입력 : 2011.12.14 16:03|수정 : 2011.12.14 16:03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1년...성과없이 좌초하나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수출주도의 성장 과실이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로 편중돼 사회양극화를 부르고, 이런 양극화가 경기 둔화국면에 사회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데 대해선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뜻은 좋아도 자기 밥그릇 빼앗기면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상생을 이끌 것인가,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 때마다 논란은 거셌다.

-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겉도는 논의

특정 업종에 대기업은 진입을 하지 말고, 확장도 자제하라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초반에 중소기업의 환영을 받으며 업종 신청이 200개를 넘을 정도로 쇄도했다. 하지만 세탁비누처럼 대기업이 '알아서' 빠지겠다고 선언하며 물의 없이 정리가 된 업종도 있지만 상당수 업종에선 갈등이 여전하다. 김치 두부 간장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진출해서 시장 자체가 더 커졌다든지, 중소기업에서 시작해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게 맞는지 등의 이견이 여전하다.

LED와 레미콘 등은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갈등 수위가 더 높다. 외국 업체에 LED시장을 뺏기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것이란 의견, 신성장 동력으로 LED 산업을 육성해놓고 이제 와서 하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박에, 전형적인 내수업종인 레미콘 사업을 좀 규모가 크다고 못하게 하면 어디 가서 먹고 살란 말이냐는 항변 등이 그것이다. 최종 회의에선 데스크톱 PC도 대기업 반대 속에 결국 결정이 미뤄졌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애매모호한 기준도 논란을 부추겼다. '진입 자제' '사업 축소' '확장 자제', 말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전에서는 헷갈리기 이를 데 없는 기준이다.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가 '이익공유제'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초지일관 자신의 작품인 '이익공유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내왔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이 품질 경쟁보다 가격경쟁 유혹에 빠져있기 때문에 원가절감을 위해 협력업체에 납품가를 후려치는 현상은 근절되기 어렵다. 그런 부분에 대한 보상이 목표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이익공유"라며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 대기업 대표위원 '회의 불참' 집단행동까지..실효성이 관건

하지만 13일 3차 회의 때 이익공유제에 대해 대기업 위원들이 거세게 반대하며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아 정 위원장은 일종의 '굴욕'을 당해야 했다. 정 위원장은 이익을 나누라는 말 자체에 대기업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이름을 바꾸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그냥 그 자체로 싫다며 강하게 손사래를 치고 있다.

논의 과정만이 험난한 게 아니다. 앞으로 더 어려운 과제 '실효성'이 남았다. 실제로 동반성장위원회의 좋은 취지에 대해 공감하던 기자들도 실행 가능성이나 현실성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정운찬 위원장은 동반위가 민간위원회라며 법제화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데, 강제성도 없는 제도가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갈등 투성이였던 지금까지 적합업종 선정 절차를 보면 이 제도가 자발적인 실천으로 정착될 것으로 낙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미 콩나물, 두부, 간장, 고추장 등의 품목은 동반성장위의 결정과 무관하게 대기업들의 사업이 지속되고 있고, 쟁점도 그대로다.

결국 지지부진한 논의 속에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서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서로 같이 잘 살자, 양측의 갈등을 해소하겠다던 동반성장위원회의 본래 취지와 어긋나게 양측 간 갈등을 더 깊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 대기업 중소기업 반대에서 이젠 중견기업도 반대

게다가 중견기업까지 반발 대열에 동참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적합업종 선정에 반발하면서 "본래 취지와는 달리 상생이 아닌 중소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제도로 변질되고 있다"며 "특히 시장에 장벽을 만드는 것은 중견기업 진입을 앞둔 우량 중소기업까지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 시절을 힘겹게 졸업하고 한 단계 도약하려는 중견기업들에게 시장 진출을 제한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대기업 집단의 태도 변화도 그리 탐탁지 않다. 지금까지는 불만스러워도 논의에는 참여해오다가, 갑자기 재계 위원들이 전원 회의에 불참하는 집단행동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현 정부 임기 말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등 뒷말이 많다.

동반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이견이 있다고 해서 대기업에 성장의 과실이 쏠리는 문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기업들은 일자리도 안 만들고, 투자도 안 하고, 이런 부분도 대한 불만이 쌓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현 가능한 방법을 같이 찾아야지, 이 기회에 눈엣가시인 동반성장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몇가지 주제가 맘에 안든다고 논의 테이블 자체에 앉지 않는 것을이해받기 어려운 이유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장막을 쳐서 보호해주는 것에 안주하고 경쟁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오히려 도와준다는 정책이 중소기업을 망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동반위가 '시장경제, 경쟁, 상생, 공유...' 등 자칫 모순될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이런 명제의 균형점을 찾는 어려운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기대의 시선을 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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