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 일본의 축구 맞대결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15일 월드컵 3차 예선 북한과 일본전이 북한의 1-0 승리로 끝났습니다. FIFA 랭킹 124위(북한)와 17위(일본)가 무색할 만큼 북한은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고, 일본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패했습니다.
일본 국민과 언론은 다소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일본 방송들은 시합이 끝난 어제 저녁 메인뉴스와 마감뉴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시합 내용과 경기장 분위기를 주요 뉴스로 다뤘고, 상당수 신문들도 오늘자 조간 1면에 사진과 함께 관련 기사를 비중있게 실었습니다.
먼저 일본 언론들은 시합 내용면에서 졸전 끝 참패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원정의 불리함은 있었지만, 이기거나 최소한 비기겠거니 하고 예상했던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무기력하게 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자케로니 감독 부임이후 16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계속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일본 축구팀이기에 실망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뉴스에 출연한 일본의 축구 전문가들 역시 "최근 보여준 일본 축구답지 못했다"며 패배를 시인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경기 내용보다 일본 언론의 초점은 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 스타디움에 운집한 대규모 응원단에 맞춰져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원정에 나선 일본팀이 지금까지 맞닥뜨린 조건 중 최악이었다며, '궁극의 원정경기'라는 표현과 함께 북한의 압도적인 응원 분위기 묘사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조선 이겨라'라는 거대한 카드섹션을 펼치는 것을 비롯해 5만 명의 관중이 하나가 되어 일본 대표팀과 150명의 응원단을 집어삼킬 것 같은 응원을 펼쳐, 격투기와 같은 살벌한 느낌마저 들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감독과 선수들도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각오는 했지만, 너무 대단한 분위기에 압도됐다며 혀를 내두르더군요.
특히 일본 언론들은 북한의 텃세, 즉 '비신사적'인 태도에 집중포화를 쏟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인공기를 맘껏 흔들며 열광적인 응원을 하면서, 소수의 일본 응원단에게는 일본 국기와 일본 대표 팀 유니폼, 그리고 현수막의 사용조차 금지시킨 점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는 중에 관중들이 큰 야유를 보낸 점을 부각시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시합 전에도 일본 언론의 보도는 '북한 때리기'에 치중됐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입국심사가 4시간이나 걸린 점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의도적인 조치'라며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절차를 최대한 간단히 하는 축구 A매치의 입국과는 달리, 북한 입국 심사관들은 선수단의 가방을 모두 열어보는 등 작정한 듯이 강도 높은 심사를 벌여, 시합 전에 이미 선수단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부 스포츠신문은 지난 8월말 북한 대표 팀이 일본에 입국할 당시, 일본 측이 2시간이나 철저하게 심사를 벌인 점에 대해 앙심을 품은 대응조치라고도 분석했습니다.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북한 입국 심사관이 승리의 1등 공신"이라며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북일전은 시합의 결과보다 '축구 외교'라는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냉각된 북한 일본 관계가 스포츠를 통해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실제 북한과 일본의 우호적인 제스처와 화답이 오가며 일본 응원단의 대규모 방북도 허용됐고, 좌절되기는 했지만 일본 중의원 부의장이 나서 국교 재개를 타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큰 불상사 없이 끝난다면,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무사히 시합은 끝났지만, 아직은 양쪽 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재확인한 시합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일본 국민들에게 북한의 이미지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시합 전후로 일본 언론은 북한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줄기차게 '이상한 나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쏟았고, 상당수 일본 국민도 북한의 광적인 응원 장면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먹은 것 같습니다. '국제 매너도 모르는 깡패국가'라는 일본 내 고정관념이 오히려 더 굳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나라 사이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하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볼 때, 아직 여유가 많은 북일 관계보다는 우리 걱정을 하는 것이 순서가 한참 먼저인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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