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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언론의 침묵, 그리고 시민의 죽음!

정준형 기자

입력 : 2011.11.11 18:14


"갱단이 무서워 언론이 침묵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 SNS를 통해 정보를 교류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갱단이 SNS에 글을 올린 시민들을 추적해 잔인하게 살인합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요? 바로 멕시코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멕시코의 마약 범죄조직과 관련해 그동안 몇 차례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범죄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9일 멕시코 북부 국경도시인 '누에보 라레도(Nuevo Laredo)'에서 35살된 한 남성이 목이 잘려나간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살해된 남성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마약 갱단의 활동과 관련한 정보들을 올려오다 변을 당했습니다. 남성의 시신은 누에보 라레도의 번잡한 거리에 위치한 기념탑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살인 사건이 발생한 '누에보 라레도'라는 도시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입니다.

                   

숨진 남성의 시신 옆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남겨졌다고 합니다. "This happened to me for not understanding that I shouldn't report on the social networks." 직역하자면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서는 안 될 글들에 대해 몰라서 이런 일을 당했다(또는 올려서는 안 될 글을 올려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의역하자면 "갱단과 관련한 글을 인터넷상에 올리면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섬뜩한 협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이 경고 문구에는 악명높은 마약 갱단인 '제타스(Zetas)'를 상징하는 영문자 'Z'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인터넷을 마약 갱단과 관련한 글을 올렸다가 잔인하게 살해된 사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에 살해된 남성이 벌써 네 번째로, 첫 번째는 지난 9월 초에 남녀 2명이 살해된 뒤, 시신이 교각에 걸린 채 발견됐으며, 두번째는 지난 9월 25일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던 30대 여성이 참수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특히 이번에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지난 9월 25일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똑같은 장소라고 합니다.

지난 9월 살해된 희생자들의 시신 옆에는 역시 마약갱단인 제타스가 남긴 협박성 경고 문구들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래는 첫번째 희생자들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경고 문구입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 구석에 마약갱단을 상징하는 'Z'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인터넷에 우스운 글을 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이다. 조심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당신을 붙잡을 테니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희생된 여성의 시신 옆에서도 아래와 같은 협박성 경고문이 발견됐습니다.

                   

희생된 여성을 조소하는 듯한 내용의 섬뜩한 경고문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들이여, 나와 당신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들 때문에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군대와 해군을 믿고 했던 나의 행동들 때문에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ZZZZ"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가명으로 활동을 했는데도, 마약갱단이 이들을 추적해서 살해했다고 합니다. 마약 갱단과 관련한 글을 올렸단 희생된 사람들이 속출하자, SNS 사용자들 모두 가명을 쓰면서 자신의 개인적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기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주 사소한 흔적이라도 남길 경우 갱단이 귀신처럼 알고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관련해 마약 갱단들이 전문 해커들을 고용해서 자신들에 대한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희생자들이 마약 갱단과 관련한 글을 올렸던 인터넷 SNS 사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왜 희생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SNS에 마약 갱단과 관련한 글들을 올렸을까요? 이유는 바로 멕시코의 언론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 갱단은 그동안 군과 경찰, 공무원들 뿐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해온 기자들에 대해서도 무자비한 공격을 해왔습니다. 기자들을 납치 살해한 일이 다반사요, 신문사나 방송사 보도국에 폭탄을 배달하는 등 협박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약 조직의 본거지가 위치한 지역 언론사들의 경우 훨씬 강도높은 협박에 시달리고 있고, 이 때문에 대부분 지역 언론사들의 경우 마약 갱단과 관련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마약갱단에 대한 고발에 앞장서야할 언론이 사실상 눈을 감고 입을 닫은 셈입니다.

이 때문에, 신문과 방송에서 갱단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지역 주민들은 인터넷 SNS를 통해 자신들끼리 조각조각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SNS를 통해 교류되는 마약 갱단과 관련한 글들을 보면 "어디서 총격이 벌어졌다, 마약 갱단이 이용하는 차량이 어디서 발견됐다, 어느 도로가 안전하다" 등의 내용들이라고 합니다. 언론이 충분히 보도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도, 이 마저도 보도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한 주민들은 갈수록 인터넷 정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블로그, 채팅 사이트 등을 포함한 인터넷 SNS 사이트에서 교류되는 정보들이 규모가 작은 지역 언론사들보다 더 광범위하게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파악한 마약 갱단이 잽싸게 공격의 목표물을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로 수정한 것입니다. '언론'에 이어 '인터넷'마저 침묵하게 하려는 마약갱단의 새로운 범죄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마약갱단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이 글을 올렸던 SNS 사이트에는 "갱단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말자", "갱단에 대한 고발을 계속 해나가자"라는 등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희망은 살아있다고 봐야할까요! 하지만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나올 경우 상황은 어떻게 변해갈지 모릅니다. 언론에 이어 인터넷마저 갱단의 뜻때로 침묵할 때, 멕시코의 상황은 어디로 치닫게 될까요?

지난 2006년 12월 칼데론 대통령이 '마약과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만 4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우려가 앞설 따름입니다.

또 한가지, 이번 취재파일을 쓰면서 기자로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이 침묵할 때,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 또 "언론 스스로 사실을 외면할 때, 국민은 언론을 믿지 못하게 되고, 그 피해 역시 언론에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멕시코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할까요. 기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겸손하게 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