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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키드플레이션' 들어보셨나요?

정호선 기자

입력 : 2011.11.09 10:36

-저출산 속 고급유아용품 점령, 우리만의 문젠 아냐


최근 한 외신기사에서 '키드플레이션(kidflation)'이란 단어를 봤다. 영국에서 살림살이가 빠듯해도 아이들을 위한 지출을 줄이지 못해 부모들 등골이 휘고 있다는 그런 취지의 기사였는데, 어린이용 제품의 가격 오름세가 전체 인플레이션율을 앞지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영국의 2008년 이후 어린이용 상품가격은 14.3%나 올라, 일반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8.5% 인상된 데 비해 훨씬 더 많이 올랐다고 전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사탕류와 초콜릿은 24% , 청량음료는 16.2%가 올랐고, 어린이옷은 17.4%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런 어린이 용품의 급작스런 가격 상승은 다른 소비재처럼 원자재값이 올랐다느니 광고 마케팅 비용에 일시적으로 돈을 더 썼다느니 그런 '원가' 요인이기라기 보다는 아예 제품 자체가 고급화되면서 값이 뛰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우리나라도 저출산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이른바 '골드키즈'가 등장하고 고급유아용품 시장도 날로 커지고 있다. 국산용품이 고급화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수입 유아용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유아용품 수입은 꾸준히 증가하며 지난해 사상 최초로 2억 달러를 돌파했다. 아이를 덜 낳으면서 유아용품 시장이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고급 유아용품 시장은 경기와 무관하게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2000~2010년) 수입 유아용품 연평균증가율은 21.3%를 기록해 같은 기간 수입 연평균증가율인 10.2%를 훨씬 웃돌았다.

수입제품 종류도 날로 다양해져 기저귀, 유모차, 젖병 등 각종 소품, 인형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수입기저귀는 2008년부터 3년간 출산장려 차원에서 부가세가 면제되면서 '군, 메리츠' 등 일본산 수입이 크게 늘었다. 실제로 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 위험이 제기되자 이전 생산분을 구입하려는 문의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주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하다.

우리나라 엄마들의 수입유모차 사랑은 너무나 유명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고가의 유럽 유모차 업체들은 우리 시장을 이미 '테스트 베드'로 여겨 신제품을 한국에서 출시할 정도로 주요 시장으로 떠올랐다. 가격대가 100~200만 원이 되는 상당히 고가의 제품임에도 불황을 모르고 팔려나가고 있다. 심지어 이런 제품들은 현지 유럽에 비해 국내에서 최대 수십만 원씩 더 비싸게 팔리고 있는 등 가격거품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어차피 그걸 사고 싶은 소비자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유모차계의 벤츠'라 불리는 '스토케'라는 유모차의 경우 우리나라 판매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만 봐도 고급 유아용품 시장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백화점업계에 따르면 현재 백화점 유아매장의 수입유아용품 판매 비중이 70%를 육박해 5년 전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수입을 찾는 이유도 있지만 국산브랜드들은 고급화 전략을 포기하고 오히려 외국제품 수입해서 파는 걸로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은 수익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은 국산 유아용품 브랜드의 몰락을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농산물이 촉발하는 '애그플레이션', 수산물 값이 올라서 생기는 '피시플레이션', 중국의 인플레이션이 전세계 물가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차이나플레이션', 가뭄 산불 등 기후변화에서 오는 환경적 요인이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에코플레이션'  등 인플레이션과의 합성어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키드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유아용품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키드플레이션'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을 가져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아이가 있는 가정의 부담을 늘리고, 다른 부문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게 되니 간접적인 영향은 있는 셈이다.

돈에 대한 개념, 합리적 소비, 그리고 인생의 현실을 배우도록 경제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로 끝을 맺고 싶진 않지만, 다시 한 번 떠올려볼 필요는 있다. 명품 유모차를 타고 자란 아이가 명품 인간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