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노이케 토모코 vs. 다카시 쿠리바야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9.11으로 불리는 테러 사건. 미국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주의, 종교와 문화 간 융합 등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가 얽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열도를 덮친 것입니다. 삽시간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지진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그 여파로 발생한 원전 사고도 다시금 자연의 무서움을 보여줬습니다.
동시대의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예술로 옮기는 사람들에게도 3.11 대지진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이렇게 무너져 버리다니. 자연이 이렇게 성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은 심지어 작가들의 작업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중진 여성작가 코노이케 토모코. 그녀는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도쿄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진은 처음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시작이 됐지만, 그 진동은 도쿄에까지 느껴졌다고 합니다.
지진에는 워낙 이력이 난 일본인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대형 재해. 주변에서, TV에서 보이는 모습은 ‘끔찍’ 그 자체였습니다.
토모코는 원래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중간자적인 존재, 반인반수 늑대를 동경하고 작품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상상 속의 반인반수 늑대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던 태초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Voice-Donning animal skins and braided grass, 2011, Mixd media, 175×135cm
지진을 겪고 나서 토모코는 다시 한 번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Iceberg, 2011
투명한 냉동고 속 꽁꽁 얼어버린 빙산. 그 안에는 그 곳에서 살았던 나뭇잎, 바로 생명체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사실 이 나뭇잎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 가져왔습니다. 방사능의 공포로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그 곳에 꼼짝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나뭇잎입니다. 지진 전부터 땅의 진동을 느꼈을 나뭇잎, 끔찍한 순간을 겪었고, 어쩌면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을지도 모릅니다.
쿠리바야시는 바로 그 순간을 화석처럼 얼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대 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면, 그때서야 그 동물이 살았던 곳을 생각하게 되죠. 지진의 아픔과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다 빙산과 함께 얼어버리겠죠. 먼 훗날 언젠가, 빙산이 녹아 방사능에 오염된 나뭇잎이 발견되면, 그제야 어렴풋이 ‘아.. 우리가 이런 큰일을 겪었었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장면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자연의 힘 앞에 떨었습니다. 그 힘이 언제 발현될 지 예상할 수도 없어서 더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진의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그 충격과 기억을 되새김질 하듯 작품을 남겼습니다. 깜빡깜빡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에게 가끔씩이라도 그 순간을 기억하라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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