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에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나가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리스 총리가 유럽연합(EU)의 2차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고 사실상 유로존 탈퇴 여부도 함께 묻겠다고 한 발언은 사실상 취소됐다.
물론 총리가 아직 철회를 공식 선언한 것이 아니고 야당이 구제금융안 승인에 동의하면 국민투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의 말을 한 것이어서 아직 불씨는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EU 집행위원회는 3일(현지 시간) 유로존 탈퇴가 쉽지 않은 일임을 강조하면서 그리스의 구제금융 수용과 유로존 잔류 필요성을 강조했다.
카롤리나 코토바 집행위 대변인은 이날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이 조약 상 가능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EU와 유로존 관련 조약들은 EU 탈퇴 없는 유로존 이탈을 상정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즉, 그리스가 유로존을 나가려면 EU에서도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토바 대변인은 "집행위는 그리스의 자리는 유로존 내에 있고 필요한 장치들도 마련돼 있으며 (그리스 2차 지원 방안에도) 이미 합의가 가 돼 있다"면서 "따라서 현재까지 우리가 알기로는 이것이 유일하게 제시된 선택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유로화를 쓰는 이른바 유로존 국가는 17개다.
EU 회원국이라도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며 다만 가입하기 위해선 일정한 심사를 거쳐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코토바 대변인의 말과 달리 EU와 유로존의 관련 조약엔 특정 국가의 유로존 이탈이나 이에 따른 EU 탈퇴와의 관련성이 명쾌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유럽통화동맹(EMU) 조약에는 "어떤 회원국도 자국의 헌정 상 필요에 따라 동맹 탈퇴를 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EU를 탈퇴하려면 우선 다른 회원국들에 탈퇴 의사를 통지하고 방법과 조건을 협의하도록 돼 있다.
통지 이후 2년이 지난 뒤엔 탈퇴조건 등이 타결되지 않았더라도 각종 EU 법규의 적용이 중단된다.
물론 다시 가입하려면 정상적인 신입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그외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의 법률자문관인 푀부스 아타나시우는 'EU와 EMU 탈퇴와 제명에 관한 일부 고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EU를 떠나면 유로화를 사용할 수 없고 자국 고유 통화를 채택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또 그리스가 ECB에 출연한 자국 몫의 자본금 등을 되돌려받을 수 있는 반면 ECB가 그리스 국채를 보유함에 따라 입은 손실은 그리스가 분담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그리스 중앙은행이 유럽중앙은행시스템(ESCB)에 편입돼 있지 않아도 그리스가 유로화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산마리노 공화국이나 모나코, 바티칸 등 도시국가들의 사례를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특수한 상황의 도시국가가 아닌 그리스로선 채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유로존을 탈퇴하고 자국통화인 드라크마를 채택할 경우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고 금리를 맘대로 조정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정책을 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로화를 계속 쓸 이유가 없다.
장 클로드-트리셰 전 ECB총재는 지난 1월 아타나시우 보고서에 대해 "ECB 공식 의견이 아닌 개인 의견일 뿐이며 일부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의 내용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시 대체로 적용될 수 있다.
학자들은 이 보고서 내용 외에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에 비해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우선 당장 국채의 디폴트 가능성이 엄청나게 커진다.
또 대외채무는 아직 유로화로 표시돼 있으나 크게 평가절하된 드라크마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채무 규모가 기하급수로 늘게 된다.
유로존을 이탈하기로 결정하자마자 시민들은 그동안 유로화로 예금한 돈을 모두 인출하려 몰릴 것이고 이로 인해 그리스 은행 시스템은 붕괴되고 사회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아울러 EU는 역내로 들어오는 모든 그리스의 상품과 서비스 수출에 관세를 매기게 되며 비회원국인 그리스 인의 EU 내 자유로운 이동과 취업도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드라크마화를 택하는 데 따른 이득이 대부분 없어진다.
이밖에 회원국 중 평균보다 소득이 떨어지는 곳의 발전을 위해 EU 재정에서 지원해주는 지역 구조조정 자금도 끊긴다.
2007-2013년 그리스에 배정된 이 자금만 해도 49억 유로나 된다.
이러한 점을 그리스 정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알고 있다.
그래서 파판드레우 총리가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를 유로존 탈퇴와 한데 묶어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히자 그간 구제금융안을 반대해온 사회당이 의회에서 통과시키자고 방침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국민투표 회부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와 별개로 이미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그리스의 서민들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지도 변수로 남아 있다.
(브뤼셀=연합뉴스)